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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월호 보기 홍지애(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잘 다니고 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서른아홉 살에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책을 만드는 일과 출판사를 운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어서 마케팅부터 영업, 정산까지 하나하나 다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해 본 적 없는 일들에 잔뜩 주눅이 들다 보니, 꽤 오랫동안 해 온 익숙한 일에서까지 실수가 잦아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는 중에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번역서를 복간하게 됐다. 한국어판 초판이 내가 좋아하는, 꽤 유명한 번역가의 글이라 새로 번역을 하고 싶지 않은데, 이런 경우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전혀 아는 바도 없고 가늠도 되지 않았다. 일단 미국에 있는 번역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와 출판사를 소개하고, 이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을 전하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당시 출판사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말했다. 혹시 그의 마음을 언짢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됐지만, 무리하게 진행할 수 있는 재정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 후 답장이 왔고, 그는 내게 다른 제안을 했다. 내가 제시한 금액으로 하되, 지금 주지 말고 1쇄가 다 팔린 후에 달라는 것이다. 자신도 무척 좋아하는 책이 다시 한국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니 참 다행이라면서,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될 테지만 만약 1쇄가 다 팔리지 않으면 비용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한동안 나는 길을 걷다가,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전철 안에서 수시로 그 메일을 꺼내 읽었다. 누군가의 이해와 응원이 주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메일을 읽을 때마다 가슴에 꽃이 피는 기분이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도 나를 이처럼 응원하는데, 나를 구석구석 잘 아시는 하나님의 응원은 얼마나 클까 싶어 눈물이 났다.
출판사를 시작한 지 2년이 돼 간다. 여전히 배워야 할 일들이 많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내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내가 머무는 모든 자리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람을 통해, 상황을 통해 나를 향한 그 마음과 열심을 보여 주시는 분이 계시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