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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의 남자들은 성장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건들을 많이 경험한 세대다. 그래서 아픔과 상처가 깊다. 그런데 그들은 상처가 뭔지도 모른 채 살아왔고,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그 상처들을 치유받을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상처의 종류는 가지가지다. 갑작스럽게 직면한 부모님의 죽음, 가난에 짓눌린 학창시절, 보호자를 일찍 떠나보낸 탓에 경험해야 했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 이렇게 마음 한구석에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다들 그렇게 살겠거니 하는 마음에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마음 깊이 박혀 있는 상처를 발견하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문제는 그런 남자들에게 용서의 미덕까지 요구한다는 점이다. 남자의 인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용서해야 할 일들도 많아지는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억울하거나 황당하게 여겨지는 일들도 많다. 조직 속에서 나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일들 때문에 미움과 용서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연유인지 운전 중 차 한 대만 끼어들어도 경적을 울리며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퇴직을 앞둔 S씨는 요즘 아들과 갈등이 부쩍 많아졌다. 아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뿐인가? “당신하고 사는 것보다 이혼하는 게 낫겠다”라는 아내의 말에 충격받아 일주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방황한 적도 있다.
자신의 상처를 용서하고 수용하지 못해 자녀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했던 지난날의 잘못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자신이 어떤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황이 불리해지거나 위기에 빠지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노를 폭발시킨다.
용서를 시작하려면 먼저 억눌러 둔 감정과 기억을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숙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땅 속 어두운 곳에 자리한 독버섯처럼 점점 더 자라난다. 억눌린 마음은 절대 그 힘을 잃지 않는다. 마치 휘발유통에 작은 불꽃만 튀어도 한순간에 터져 버리듯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 된다. 나를 위해 나 자신의 상처를 용서하자. 용서는 나를 위한 가장 큰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