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과월호 보기
30년을 넘게 지방 근무를 해 왔던 한 남성은 퇴직을 앞두고 적잖이 당황하게 됐다. 자녀교육도, 부모님을 모시는 일도, 형제들과의 복잡하고 소소한 일도 아내에게 다 맡겼었다. 아내가 당연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주말에 부부가 만나면 냉기가 감돌았다. 그동안 지방으로, 해외로 떠돌았던 인생의 마지막이 절벽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끝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동안 결혼 생활을 뒤돌아보니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가진 적도 없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도 없었던 것을 깨닫게 됐다. 자신이 없는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면서 겪었을 여러 아픔들을 어루만져 본 적도 없었다. 아들들이 속을 썩여도 못 본 척 아내에게 맡겨 두었다. 주말이면 집에 나타나 점검하듯이 둘러보고, 일요일 오후에는 일터로 내려갔다. 자신이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그가 아내와 함께 가정회복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부부는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나누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30년이 넘게 묵혀 온 상처들을 나누면서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고 서로를 위로해 주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자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서로에 대한 깊은 불신이 신뢰로 변화됐다.
이전에는 마주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는데, 이제는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중이다. 아내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 명절에는 처음으로 두 아들과 함께 부부가 가족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이들의 모습도 더 밝아졌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을 더 즐거워한다며 아내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아내의 행복으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는다. 아내의 얼굴에서 행복이 가득 담긴 인생의 무지개를 봤기 때문이다. 퇴직 이후 부부가 함께할 일을 찾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미소보다 아름다운 무지개가 또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