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내 곁을 떠난 지 36년,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계신다. 순간순간 아버지가 그리워 몸살이 나기도 하고, 아버지와 살갑게 이야기하고 싶은 때도 있다. 아직도 아버지만 생각하면 어린 아들이 되고 만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가 떠난 자리는 아쉬움 외에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머리가 빠지고 흰머리가 늘었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 아들로서 아버지가 그립다.
내게도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아이들과 아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듣고 싶다. 내 의미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 준 가족, 인생의 즐거움의 근원지인 가족보다 감사한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후배의 아들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살붙이를 떠나보낸 아비의 깊은 슬픔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살이 찢어지는 듯했다. 자신에게 친구 같은 아들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의 주검 앞에 절규했고, 한없이 아파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은 없다. 특히 위로하고 싶어도 위로할 수 없는 일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이다.
오늘도 아버지로서의 내 모습을 돌아봤다. 아직도 아이들을 내 생각과 고집대로 이끌어 가려고 허둥대고 있었고, 부족함 없는 사랑이 아니라 부족함을 확인하며 살게 하고 있었다. 이제 아픔을 생각하기 이전에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날, 이별의 아픔보다 함께한 사랑의 추억들이 더 생각나게 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을 계산해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한 번뿐인 인생,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들 중에 하나가 가족과 함께 사랑의 추억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다. 내 인생에 후회로 남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