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비가 오는 깜깜한 밤에 형제들과 모여 귀신 이야기를 하곤 했다. 형들의 이야기는 오감을 자극했고, 참 많이 무서웠다. 하필 그런 날은 예외 없이 한밤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진다. 혹시 화장실에서 귀신이라도 나오면 어쩌지 싶어 두려운 마음에 형들에게 같이 가달라고 사정사정했던 일이 기억난다.
어린 시절 저마다 있을 법한 이 ‘혹시’라는 두려움은 마흔 이후에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생각과 생활을 점령하기도 한다. 마치 3D영화를 볼 때 입체안경을 쓰고 보면 스크린에서 실물이 튀어나오는 것 같아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고 할까? 자신이 쓰고 있는 입체안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인도의 전설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쥐가 있었다. 마술사는 쥐를 고양이가 되게 해 줬고 곧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개를 만났다. 마술사는 다시 고양이를 개가 되게 해 줬다. 한때 쥐와 고양이였던 개는 잠시 안심했지만 곧 호랑이를 만났고, 마술사는 개를 호랑이가 되게 해 줬다. 그러나 얼마 후, 그 호랑이가 사냥꾼을 만났다고 투덜대며 찾아오자 마술사는 더 이상 도와주지 않고 다시 쥐가 되게 했다. 몸은 호랑이가 돼도 여전히 쥐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포로가 된 중년 남자는, 몸은 호랑이인데 마음은 쥐일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마음속에 ‘실패, 거절, 건강 악화, 돈이나 가족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을 안고 생활한다. 두려움에 싸인 남자들은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하며 인생을 허둥댄다. 두려움에 붙들린 남자에게 새로운 도전과 선택은 요원한 일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희망이라는 명약을 통해 치료될 수 있다. 후회는 막차로 오는 것이지만,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온다. 위기 속에 희망이 있고, 희망 속에 사람이 있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희망을 바라보며 희망을 이룬다. 바늘귀에 실을 꿰려는 희망과 목표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시선을 바늘귀에만 집중한다. 감히 인생에 대한 후회와 두려움이 끼어들 틈이 없다. 바늘귀만 한 희망이 미래의 통로일 때가 많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두려움의 크기보다 더 큰 희망을 찾아내자. 희망을 붙들고 사는 인생은 매일이 활기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