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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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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아버지를 상징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버럭’이다. 집에서 쉬는 날이면 한두 번은 버럭 화를 내기 때문이란다. 남자들은 왜 이렇게 버럭거리며 사는 것일까? 사실 남자들은 스스로에게 화를 낼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좀 더 일찍 노력했으면’, ‘내가 좀 더 신경 썼으면’ 하는 생각에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화내는 순간을 살펴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 때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많았던 가정 문화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곧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엄격한 가정 규율이 빚어낸 병리 현상이다.
그때만 해도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소위 범인 색출을 위한 단체기합이 많았다. 단체기합도 무서운데 잘못을 인정하고 나면 얼마나 더 혼이 날지 어린 마음에 두려웠을 것이다. 단체기합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잘못을 한 사람이 있다 해도 버티고 버티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처럼 이유 없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감은 자라났고, 자신이 잘못했을 때마저도 스스로 책임지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됐다. 이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더 그렇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마음속에 있는 불편함의 원인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인정하며 살기는 정말 어려운 것일까? 돌아보건대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는 일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평안할 때는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비난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누구 때문’이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도망쳐 버린다. 심지어 내가 부족한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나 때문이라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잘못된 것은 빨리 ‘나 때문’이라고 말하고 편하게 지낸다. ‘누구 때문’이라고 탓하기보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사실 알고 보면 내 잘못이 더 많음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