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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춤추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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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담자가 찾아왔다. 3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더 이상 악화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나아진 건 없다며 하소연했다. 그녀는 하나님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이 없으며, 기도를 해도 답답하기만 하고, 찬양을 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그 바람은 간절했다.
사실 내담자의 고민은 곧 내 고민이었다. 남편과 더불어 가정사역을 한 지 10년 만에 한계에 도달했다. 앎과 삶 간의 괴리 때문이었다. 알지만 행함은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부모들에게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공감의 언어를 가르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충분히 이해한 듯하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 자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공감은커녕 소리부터 지른다. 그러다 죄책감에 빠져든다.
심한 죄책감 끝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들은 엄마의 이런 반응이 며칠이나 갈까, 언제 소리 지르나 싶어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또 폭발한다. 아들이 한마디 한다. “엄마, 차라리 옛날처럼 그냥 소리 지르는 게 낫겠어요.”
인지교육의 한계에 대한 고민은 나를 신체심리학자의 길로 이끌었다.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최고의 치료 도구다. 인지, 정서, 행동을 통합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첫 단계는 감정 치유다. 단단하게 뭉쳐서 가슴 한가운데를 짓누르고 있는 감정의 덩어리를 해체시킨다. 억울함, 원망, 외로움, 소외감, 미움 등 산더미 같은 감정의 쓰레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몸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말갛게 정화된 감정을 통해 깨달음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이것을 다시 몸으로 연습한다.
한나절이 지날 즈음 내담자를 짓누르던 감정의 덩어리들이 눈물, 콧물, 땀, 소리를 통해 흘러나갔다. 말갛게 비워진 마음의 그릇에 퍼부어지는 성령의 은혜, 그것은 세포, 근육, 핏줄, 뼈 마디마디를 통해 온몸으로 흘렀다. 손짓, 발짓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큰 몸짓으로 바뀌었다. 온몸을 넘나드는 리듬은 분명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자신만의 몸짓이었다. 아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령의 은혜가 물결치고 있었다.
이후 그녀의 삶은 곧 춤이 됐다. 춤추는 그리스도인, 요즘 내 최대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