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과월호 보기
P복지관에서 1년 동안 자폐아와 지적장애 1급 아동을 위한 가족동작치료사로 봉사했다. 증상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에서부터 소위 멘붕이 됐다.
우선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뛰고, 구르고, 때리고, 할퀴는 등 아수라장이었다. 행동을 통제하면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다. 눈 마주침도 안 되고, 말도 통하지 않고, 주위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5명의 아이들이 각자의 세계 속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바꾸려는 조급한 시도는 처절한 실패로 돌아왔다.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조금의 진전도 보여 주지 않았다. 화가 났다.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 대신, 아이들을 관찰했다.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갔다.
유난히 덩치가 큰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늘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하면 발로 차고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거부했다. 그날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머리를 바닥에 사정없이 찧었다. 내가 고쳐줘야 할 문제행동으로만 여겼는데, 다시 보니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선생님, 저 오늘 정말 화났어요. 좀 돌봐 주시겠어요?”라는 호소였다. 가만 무릎을 갖다 대었다. 아이는 바닥 대신 내 무릎에 머리를 찧었다. 등에다 손을 올려놓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이 스스로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옆으로 몸을 웅크렸다. 머리를 쓰다듬자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 눈에는 분노가 아니라 한없는 평화가 감돌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손을 잡아끌더니 제자리에 반듯하게 앉았다.
이후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췄다. 제자리에 꽤 긴 시간동안 앉아 있게 됐다. 친구들을 때리는 대신 손잡고 악수하게 됐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제자리, 스톱 등의 지시도 이해하고 따르게 됐다. 심지어 자신이 리더가 돼 낙하산을 가지고 U턴, P턴, S턴 등의 창의적 움직임까지 만들어냈다. 1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장애인, 길게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우리 가정 안에도 장애인이 있다. 유난히 성장이 느린 아이들이다. 아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모인 내가 장애인일지도 모르겠다. 영혼의 성장이 느린 장애인 말이다. 이런 나를 주님은 길이 참으신다. 길게 사랑하는 일, 그것은 곧 길이 참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사랑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