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화를 낸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현관에서부터 이리 오라며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여기 신발 벗어 놓은 것 좀 봐라. 똑바로 정돈해 놔!’ ‘화분에는 물을 준 거야?’ 하며 한바탕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집안으로 들어오신다. 매일 이런 식으로 온갖 문제를 잘도 찾아내는 게 차라리 감동스러울 정도다. 식사를 할 때도 ‘거 밥 먹는 꼴이 그게 뭐냐. 꼭 개가 밥 먹는 것처럼!’ ‘식사 중에는 재잘재잘 떠들면서 먹지 마라’는 등 눈에 보이는 대로 주의를 준다. 요즈음은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치기도 한다. 큰 소리로 고함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성난 사자 같다. 금방이라도 나를 후려칠 것 같다. 가끔 아버지가 며칠 출장을 가신 날은 집안이 조용하고 여유가 있다. 가족 모두의 얼굴이 환하게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는 현관의 신발도 잘 정돈하게 되고, 정원에도 정성껏 물을 뿌리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의 글이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무서웠다.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2층으로 도망갔다. 할 수만 있다면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으려 바깥을 맴돌았다. 온종일 만화방에 처박혀 있다가 해질녘이면 돌아왔다.
청년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앞에 한없이 울었다. 그럼에도 내 속의 상처와 죄성과 모자람은 그대로였다. 고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늘 모자랐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질책하고 벌주고 야단치는 분이었다. 하나님이 무서웠다. 구원의 감격은 사라졌다. 대신 두려움과 죄책감이 자리 잡았다.
그때 나는 이 단어를 만났다 “아바 아버지!” “아빠, 아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말이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호칭이다. 그런데 주님이 먼저 아빠로 다가오셨다. 무서워서 명령을 따르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신분을 확인해 주셨다. 나는 무조건적 은혜로 받은 구원을 조건적 행위로 덧칠하고 있었다. 육신의 아버지라는 안경을 벗어 던졌다. 여전히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한결같이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두려움이 녹아내렸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에 주저함 없이 고백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나는 매일 부른다. “아빠, 아빠!”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