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재미교포를 만났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성공한 남성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고, 자녀들도 결혼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온 사이라서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를 잘 극복하고 성공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지갑에 있는 작은 노란 종이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 종이에는 “??? 거리에서의 새벽 시간을 기억하자”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아내는 아프고 돈은 떨어지고 일할 곳은 없었단다. 새벽 거리를 걸을 때 그처럼 비참하고 곤혹스럽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없었단다. 인생의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 빠져 헤매던 그 순간은 죽음마저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그 시간들을 겨우겨우 보내고 이제는 성공했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잊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절망스러웠던 순간을 메모해 지갑에 넣고 다닌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에 이뤄진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를 하찮은 것들로 여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감사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사소한 행복의 가치를 아직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현대사회는 욕심꾸러기 천지다. 모두가 더 갖지 못해서 안달이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큰 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계속 더 많이 갖겠다는 생각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한 감사부터 챙겨보자.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지금의 삶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수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아간다. 나이만큼 커지는 것이 욕심이라고 했다. 욕심은 의욕과 희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칫 ‘욕된 마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참 행복하다. 육십을 앞에 둔 한 남성의 메모를 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록해 보았다. “청파동 언덕을 오고 가던 그 시절을 잊지 말자!” 내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막내아들로 부족함 없이 지내던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고 청파동 언덕에 있는 한 허름한 집에서 생활을 했었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가장 아프고 힘겨웠던 순간들, 지금은 마음의 굳은살이 되어 어떤 일도 이겨낼 디딤돌이 되었다. 그래서 그 힘겨웠던 순간들이 이제는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