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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전심으로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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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은 몇 가지 등산로 중 자기가 선택한 코스를 따라 올라가게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만 하면 큰 성취감을 맛본다. 그러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코스 선택의 자유가 없다. 정해진 코스대로 달려가야만 정당한 경기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지 정해진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심(concentration of mind)이 필요하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아합 왕가를 심판하도록 예후를 사용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큰 보상을 내리셨다. 북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왕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약속하신 것이다(30절). 이스라엘 어떤 왕조도 3대, 즉 50년 이상을 유지하지 못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함으로(31절) 하나님은 제한된 축복을 주신다. 예후에 대한 보상과 징벌을 동시에 주신 것이다.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에 대한 숭배를 멈추지 않아 예후는 완전한 종교개혁을 이루지 못했다(29절). 이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양면적이고 미온적인 신앙은 축복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후가 하나님을 “전심으로”(원어적 의미는 ‘가장 깊은 내부의 마음에 열중하라’) 섬기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개혁에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민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말은 잘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그 말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일학교 교사나 순장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지 잘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는 말씀을 외면한 채 사는 것이다. 가정에서 남자들이 아버지 노릇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다. 자녀들에게 이것도 해서는 안 되고 저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본인은 아무렇게나 생활한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진리의 잣대를 갖다 대지만, 스스로는 합리주의라는 우상 아래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그대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인가? 다른 사람을 속이려면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후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나를 붙드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특히 익숙한 옛 습관과 불필요한 욕망은 단호하게 개혁 대상으로 삼자. 이제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나를 전심으로 사랑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그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