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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교통사고 경험이 있다. 나의 과실로 사고를 겪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실수로 큰 고생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성실하게 일하던 직장인이 회사의 부도로 실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내 실수와 연약함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외부 환경으로부터 오는 고통에 대해 어떤 남자들은 쉽게 좌절한다.
한편, 어려움이 올 때 반항하고 거부하는 남자들도 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내보내기를 거부하는 바로와 출애굽을 시도하는 모세의 맞대결은 긴장감의 연속이다(출 4:18~12:51). 결국 당시 가장 뛰어난 지략가들과 마술사들과 군사들을 보유한 바로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한 모세 앞에 굴복하게 되었다. 바로는 완악한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 채, 무장한 병사들을 병거에 태워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한다. 그러나 바로의 분노와 맹렬한 추격은 홍해에 빠져 실종되고 만다. 좌절된 기대 앞에서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일도, 반대로 바로처럼 분노하며 반항하는 일도 남자들에게는 고통이다.
두 제자는 자신들이 따르던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더 이상 예루살렘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엠마오를 향했다. 이때 중간에 동행한 한 남자가 “무슨 일이냐”라고 묻자(19절), 두 사람은 그동안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졌던 소망과 열정, 예수님의 죽음, 빈 무덤이 가져온 절망에 대해 말해 주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남자는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가지고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도착해서 그 남자가 떡을 떼어 나누어 줄 때에야 비로소 두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자신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음을 깨닫게 된다(32절).
오늘날 남자들 역시 인생의 광풍이 몰아쳐 그동안 세운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 조난당한 것처럼 당황한다. 그러나 삶의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남자들이 새로운 힘을 얻고 새롭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 또 다른 엠마오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펴서 그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기도의 무릎을 통해 하나님께 삶을 위탁하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절망은 우리의 부족한 생각, 어리석은 기대의 결과일 때가 많다. 예수님을 만나야 할 사람들은 바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거친 세상을 사는 남자들이다.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할 때 우리는 엠마오로 향할 것이다. 엠마오가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을 향해, 행복을 이뤄갈 가족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할 열방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