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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생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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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생각하는 사람들 오늘>을 보면 “어쩌면 아쉬운 것은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다. 생겨나서 사라지는 매 순간순간을 맘껏 기뻐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 자신이다. 오늘 하루를 그 충만하고도 완전한 행복으로 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보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간다. 어떻게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기가 사원감인지 아니면 장래 사장감인지를 진단하려면 평소에 달력의 어떤 날을 기다리는지를 보면 된다. 월급쟁이는 빨간 날 즉 휴일을 기다리지만 장래 사장감은 까만 날 즉 평일을 기다린다. 당신은 일에서 벗어나는 휴일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고객이 움직이고 시장이 열리는 평일을 좋아하는가. 그런 차이를 남들이 느낄 정도가 되면 한 사람의 직장생활 및 인생의 판도가 바뀐다. 또 ‘청소년, 중년, 노인’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세 그룹을 가르는 것은 평소 어떤 얘기를 하느냐다. 과거를 얘기하면 노인이요, 현재를 말하면 중년이며 미래를 꿈꾸면 그가 바로 청년이다.
예수님과 중풍병자와 서기관, 바리새인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다. 중풍병자와 중풍병자의 침상을 메고 온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를 치료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지붕을 뚫는 절박한 믿음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평가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정죄하려 했다(눅 5:21). 그들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 죄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죄사함을 선포하신 예수님을 참람죄로 몰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 깊은 생각을 알고 계셨다(눅 5:22)는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직시하는 예수님께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고, 생각의 올무에 매여 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인생의 고정관념을 붙들고 사는 중년남자들의 모습과 같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예수님께 내어놓는 순간 참된 자유를 맛보게 될 것이다.
남자들이여, 내게 다가오는 현실을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는가? 생각의 필터가 고장 난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지식과 사회적 지위가 나의 인생기준인가? 아니면 내 삶의 모든 문제가 예수님 앞에 갈 때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사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은혜의 삶을 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