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적어도 크게 두 가지의 어려움 앞에서 믿음의 길을 가고 있었다. 하나는 당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 위기 등 내부적인 문제라면, 다른 하나는 보다 외부적인 문제였던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였다.
고난의 현재를 살았던 사도 요한
먼저 외부적인 어려움이란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때는 로마 황제들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을 신(神)으로 선언한 도미티아누스 황제(A.D. 81~96년) 제위 시절로 보인다. 자신을 신으로 선언한 그는 오직 예수님만을 주(Lord)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을 심하게 핍박했는데 네로 황제가 다시 살아났거나 아직도 살아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요한은 이와 같은 극렬한 박해의 어려움 한가운데 있었다.
내부적인 어려움으로는 당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 약화 현상이다.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계 2:4).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계 2:20).
이처럼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당시 소아시아지역 교회들은 ‘과연 기독교가 박해를 이기고 믿음을 지켜 낼 수 있을까?’라고 우려될 만큼 신앙의 위기 가운데 있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네가…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6).
게다가 요한 자신도 유배의 몸이었다. “나 요한은…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안팎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요한은 어떻게 이렇게 분명한 승리로 가득한 놀라운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로마 제국의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 그는 어떻게 믿음의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승리의 미래를 확신한 사도 요한
요한계시록이 보여 주는 요한의 인물됨의 첫 번째 단서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명백한 신앙이다.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계 1:5~7).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계 1:17~18).
요한계시록 1장의 20개 구절 가운데 예수님과 관계없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 신약의 모든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님만이 사망까지 다스리는 만물의 진정한 통치자이심을 요한은 요한계시록 첫 장부터 반복하는 데 집중했다.
요한은 또한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일관되게 기록했다.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28~31회 이상 사용됐다. 그리고 그 ‘어린양’을 독특하게도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묘사했다(계 5:6). 요한은 힘없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죽으신 그분이 부활해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계 17:14)이실 뿐 아니라 ‘성전’이시고(계 21:22), ‘등불’이시며(계 21:23),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근원이심(계 22:1)을 깨달은 자다.
요한의 인물됨을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단서는 구약에 정통하다는 점이다. 요한계시록에는 구약이 400회 이상 암시돼 있어 구약을 전제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계 1:13) 구절은 다니엘 7장 13절을 보게 한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약을 이미 성취하셨음을 본 인물이기에 미래에 있을 믿음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요한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사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건이 궁극적이고 구원의 완성이며 승리임을 확신했기에 당시 안팎의 모든 고난을 기꺼이 뒤로하고 미래의 승리를 말할 수 있었다.
요한은 우리에게 부활의 예수님과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도전한다. 요한계시록 묵상을 통해 고난의 현재에서 승리의 미래를 살아간 요한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의 성숙을 이루기를 기도한다.
***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이 누구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필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베대의 아들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요한(막 3:17)이라고 본다. 오광만 교수의 《영광의 복음 요한계시록》 23~26쪽, 존 스토트의 《신약의 메시지》 277~287쪽 등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