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복음서에 등장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그들 개개인의 말이나 행동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경우는 많지 않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 정도이고(참조 마 10:2), 베드로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말이나 행적이 기록된 인물은 별로 없다(참조 마 16:13~20; 눅 5:1~11).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받은 빌립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제자 빌립과 관련된 내용이 요한복음에 네 번이나 언급된 점이 눈에 띈다(요 1:43~46, 6:5~7, 12:21~22, 14:8~11). 아마도 요한복음은 빌립과 관련된 사건을 기록해 그가 예수님을 알아 가는 앎의 여정을 보여 주려고 한 것 같다.
빌립은 먼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대 장면에 등장한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1:43). 이후 예수님을 따르며 제자의 길을 걸어간 빌립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 14:8)라는 간청을 끝으로 등장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런 빌립의 요청은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라는 놀라운 진리(요 14:10)를 말씀하게 만들었다.
이 두 사건 사이에서 빌립은 오천 명쯤 되는 무리(요 6:10) 앞에서 예수님께로부터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에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라고 답하는 장면에 다시 등장한다.
또한 빌립은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는 요청을 말씀드려(요 12:20~22)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는 예수님의 계시의 말씀이 선포되는 상황에서도 등장한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 데에 있다면(요 20:31), 그리고 그 생명은 예수님께만 있고, 이 예수님은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이라면, 빌립은 이 목적을 이뤄 가는 실제 인물이기에 충분하다. 요한복음을 통해 선포되고 드러난 예수님에 관한 중요한 진리, 곧 복음 선포가 빌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갈망한 빌립
그렇다면 빌립은 어떤 인물이기에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에 관한 진실이 계시되는 일,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분 안에 영생이 있다는 진리가 선포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었을까?
먼저 그가 처음 등장한 요한복음 1장 43절 이하의 본문을 살펴보겠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장면인데, 예수님의 초청에 대한 빌립의 대답을 눈여겨보자.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 예수님께서 가르침과 표적을 많이 행하신 때가 아니라는 점에서 빌립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더욱 놀랍다.
이 본문은 빌립이 얼마나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을 평소에 가까이한 자였는지 단숨에 보여 준다. 그는 분명 구약의 말씀에 마음을 두고 있었으며, 율법과 선지서 곧 구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약속인 메시아를 사모하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자들과 다를 바 없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빌립의 인물됨을 생각하게 하는 또 하나는, 그의 내면과 영혼의 간절한 갈망이다. 이는 빌립이 예수님과의 마지막 유월절 식사 중에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7)라는 말씀에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 14:8)라고 간청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성취로서 오신 메시아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메시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메시아를 받아들이려 끝까지 애쓰다 마침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다(참조 요 20:19; 행 1:13; 고전 15:5).
요한복음을 묵상하며 빌립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 가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