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이스라엘이 38년간 머문 가데스바네아
민수기의 지리적 포인트는 시내산-가데스바네아 - 모압평지다. 이중 가데스바네아는 이스라엘이 38년가량 지낸 장소로, 이곳에서 일어난 가나안 정탐 사건으로 인해 광야 생활 기간이 결정됐다.
정탐꾼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산지로 오갈 때 들렀을 것으로 예상된 장소는 아브닷, 브엘세바, 드빌, 헤브론이다. 예루살렘에서 산 능선으로 난 족장의 도로를 따라 달리니 한 시간도 안 돼 30km 떨어진 헤브론이 나왔다. 가는 길에 좌우로 펼쳐진 포도원을 보니 정탐꾼이 왜 포도나무 가지를 메고 갔는지 알 수 있다. 헤브론은 해발 1,000m에 위치하며 과실을 재배하기에 강우량이 충분하다.
헤브론에서 내려오는 길, 기럇세벨로 불리는 드빌은 첫 사사 옷니엘이 차지한 성이다. 갈렙이 헤브론을 얻은 후 딸을 걸고 드빌을 얻으려 했던 이유는, 이곳이 남쪽으로부터 오는 적을 막는 보호막이 됐기 때문이다. 드빌에서 산지를 내려오면 목초지로 이용되는 드넓은 네겝(남방)이 있는데,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블레셋 아비멜렉과 평화 조약을 맺은 땅이다.
브엘세바에서 정탐꾼이 돌아간 광야를 바라보니 광활하고 아득하다. 그들이 포도를 가져갔다면 그 시기는 분명 여름인데, 40~50도 되는 더위에 이들은 어떻게 걸어갔을까? 분명히 아브라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거워지기 전까지 걷고, 저녁 서늘할 때 다시 달려갔을 것이다.
만나처럼 메추라기가 공급된 곳
브엘세바에서 남쪽으로 50km를 달리니 아브닷샘이 나온다. 샘이 터져 나오는 근원에 다다를수록 깎아지는 듯한 좌우 절벽은 고라가 모세를 반역하다 땅에 삼킨 그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아브닷샘이 흐르는 계곡은 평평한 광야가 갑자기 갈라져 꺼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남쪽으로 직선 30km만 가면 되지만 길이 없어 빙빙 돌아 몇 시간 만에 가데스바네아 앞 국경까지 왔다. 가데스바네아는 민수기 13장 26절에는 바란광야에 위치한다고 하고, 민수기 33장 36절에는 신광야에 있다고 한다. 시내반도에 위치한 시내산을 떠난 이스라엘이 시내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향하면 먼저 만나는 광야가 바란광야고, 그다음이 신광야다. 가데스바네아는 바란광야와 신광야의 경계에 위치하기에 두 지역의 도시로 언급되곤 한다.
민수기 11장 31절에 메추라기가 하룻길 되는 지면 위에 내린 것을 보면 이스라엘 진영의 넓이가 이 정도 됐으리라 추정되기에 국경이 있는 곳에도 광야의 진이 머물러 있었을 것 같다.
같은 길 다른 보고
정탐꾼들은 포도, 석류, 무화과 등을 가져와 정탐 결과를 보고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땅은 좋지만 그 땅의 백성이 강하다”였다.
하지만 해석은 갈렸다.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의 갈렙은 “적군은 우리의 먹이일 뿐이다”라고 주장했고, 나머지 열 지파 대표는 “우리는 가나안의 간식거리밖에 안 되는 메뚜기다”라고 보고했다.
이스라엘은 부정적인 보고를 따랐고, 불신의 대가는 컸다. 여호와께서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다(민 14:28).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먹이처럼 차지했지만,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장년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 믿음은 기도한 대로, 선포한 대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