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담임목사,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저자)
힌놈의 골짜기, 지옥 상징
감람산에서 바라보면 예루살렘에는 크게 세 개의 골짜기가 보인다. 동쪽의 기드론 골짜기, 성경에 막데스지역으로 나오는 중앙 골짜기(습 1:11), 그리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이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힌놈의 골짜기’로도 불렸고,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왕 이래로 몰록에게 자녀를 불살라 드리는 어린이 인신 제사 장소로도 악명이 높았다.
예레미야서에는 힌놈의 골짜기를 저주하며 죽음의 골짜기로 부른다. 또 성전에서 제사하고 남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사용해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오는 문을 분문(糞門, 똥문)이라 불렀다. 시체와 각종 부정한 오물을 태우는 장소가 된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깊고 음산하며, 항상 타는 냄새가 올라와 묵시 문헌에서는 이곳이 심판의 때에 지옥이 될 것이라 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음역하는 과정에서 ‘힌놈의 아들 골짜기’인 ‘게 벤 힌놈’이 ‘게헨나’가 됐다. 헬라어에는 ‘지옥’이라는 단어가 없어, 지옥과 현상적으로 가장 닮은 게헨나를 지옥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가룟 유다, 게헨나에 떨어지다
힌놈의 골짜기에는 가룟 유다가 목매어 죽은 아겔다마가 위치한다. 가룟 유다는 아겔다마에서 목을 맨 줄이 끊어져 깊은 힌놈의 골짜기로 떨어지면서, 배가 터져 창자가 나와 죽었다(행 1:18). 창자는 유대인에게 마음을 의미한다.
가룟 유다는 지옥이라 불리는 게헨나에 떨어졌고, 터진 창자에서 나온 마음과 영도 지옥에 떨어졌다. 그가 죽은 땅 아겔다마의 뜻은 피밭이다(행 1:19). 가룟 유다는 죽기 전 양심에 가책을 느껴 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판 몸값인 은 삼십을 던졌다. 그 돈으로 제사장들은 그가 죽은 장소인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그의 묘지로 만들어 줬다(마 27:3~8).
마태는 이것을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선포하며(마 27:9~10), 예레미야서의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그릇이 터지는 장면을 떠올렸다(렘 18:4). 또한, 스가랴가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꺾으며 은 삼십의 품삯을 받아 토기장이에게 던지는 예언이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슥 11:10~13). 아겔다마가 있던 지역은 현재까지 아무도 집을 짓고 살지 않는 광야와 같은 땅이다.
성 오누프리우스 수도원
아겔다마에 있는 ‘성 오누프리우스 수도원’의 입구에 들어서니, 왼쪽 절벽에는 버드나무가 줄기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어 마치 가룟 유다가 죽은 장면을 연상케 한다. 성 오누프리우스는 벌거벗은 몸으로 수도 생활을 하다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우리의 배신과 저주를 몸으로 짊어지듯 수도 생활을 하다 죽은 셈이다. 그를 기념해 1874년에 성 오누프리우스 수도원(St. Onuphrius)이 세워졌고, 현재 그리스 정교회 여성 수도사들이 지키고 있다. 예배 처소 가까운 곳에는 주님께서 체포될 때 제자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도들의 동굴이 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
이곳에 피신한 사도들, 특히 베드로는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회개였다. 가룟 유다는 은을 던지면서 후회하고 반성은 했지만, 회개하지는 않았다. 회개는 히브리어로 ‘슈브’, 즉 ‘돌아간다’는 뜻이다. 유다는 후회했고 반성했지만, 예수님께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갔다. 결국 한 사람의 의로움은 죄의 경중에 있지 않고, 얼마나 철저히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가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