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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복음의 진수, 로마서를 들고 로마로!

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담임목사,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저자)

고린도에서 로마로, 성경 속 장소 등장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면서 기록한 서신이다.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모두 마친 후, 복음의 진수를 이 서신에 기록한다. 그리고 이를 고린도의 항구 겐그레아 출신인 여자 집사 뵈뵈의 손에 들려 로마로 보낸다.
고린도에서 로마로 가려면, 먼저 배로 550km를 항해해 로마 브린디시 항구에 도착해야 하고, 거기서 다시 압비오 길을 따라 582km를 가야 한다. 이 길의 주변에는 로마로 호송됐던 바울이 도착한 보디올 항구와 그가 지났던 압비오 광장, 그리고 트레스 타르베네(삼관) 등 성경 속의 장소들이 있다.


쿼바디스와 카타콤, 순교와 신앙의 상징
압비오 길 오른쪽에는 베드로가 발길을 돌이킨 쿼바디스 도미니에 기념교회가 있다.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나온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성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 지점에 기념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교회 정면에는 “예수님처럼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힌 베드로의 모습이 보인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는 베드로 성당이 지어져, 로마 교황청이 있는 화려한 바티칸이 됐다.
교회를 나오자 맞은편에 ‘카타콤’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성벽 밖에 거미줄처럼 수십 km가 연결돼 있는 지하 무덤은 박해의 때에 신앙을 지키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의 선배를 만나는 격려의 장소다. 지하 무덤 곳곳에는 물고기 등의 문양과 선한 목자, 그리스도라는 글자가 남아 선배들의 신앙을 전해 준다.


콜로세움, 망국의 한이 서린 장소
거대한 성벽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아 콜로세움이 보인다. 바울이 로마서를 썼을 때 이곳은 네로의 수상 정원이었다. 그는 로마를 불태운 뒤 이곳에 거대한 궁전을 지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예루살렘 정벌 중 정권을 잡은 베스파시아누스가 복합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을 세우기 시작했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그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 콜로세움이 완성됐다.
경기, 검투, 심지어 물을 넣어 해상 공연까지 할 수 있었던 이곳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희생됐다. 콜로세움 건설 과정에는 많은 유대인 노예들이 동원됐다. 그런데 건축을 마친 후, 기술의 유출을 염려해 노동자들을 죽였다고 하니, 유대인의 눈으로 보면 이곳은 망국의 한이 서린 장소다. 그런데 이런 장소가 하나 더 있다.


티투스 개선문, 예루살렘 멸망의 상징
포로 로마노라고 알려진 로마의 아고라에 들어서면 티투스 개선문이 우리를 맞는다. 이 개선문은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것을 기념해 세워진 개선문이다. 개선문의 안쪽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로마군이 예루살렘성전의 촛대를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A.D. 70년에 일어난 일을 새긴 부조가, 2천 년이 지난 후에도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하나님께서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교회에게 촛대를 옮기리라고 경고하셨는데, 예루살렘교회가 첫사랑을 잃자 그 촛대, 그 교회를 옮기셨던 것이 아닐까?
콜로세움과 티투스 개선문 사이에 더 큰 개선문 하나가 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개선문이다. 기독교를 박해한 네로의 흔적과 유대를 멸망시킨 베스파시아누스, 그리고 티투스의 유적 가운데에 그리스도를 인정한 콘스탄틴 황제의 개선문이 위치하는 것은 우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