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아시아의 문화도시, 에베소
에베소의 웅장한 유적을 보자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고려 학자 길재의 시가 저절로 나온다. 박해의 문을 지나 요한이 머물던 에베소의 아야솔룩에 올라보니 에베소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이곳에 왔을 때 만 해도 에베소는 항구도시였다. 산과 바다, 그리고 강이 어우러진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다. 강력한 우상 문화 때문에 사도 바울도 2차 전도여행 때는 성령님의 거절을 당하고 더 준비된 후에야 이곳을 찾았을 정도다. 사도 바울은 벌벌 산과 파나일 산 사이에 위치한 에베소1에서 사역했고, 사도 요한은 에베소2에서 사역했다. 에베소2와 에베소1 사이에는 로마 시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기둥 하나만 남아 그 위용을 나타낸다. 에베소1에는 사도 바울이 2년간 매일 말씀을 강론했던 두란노 서원으로 여겨지는 셀수스 도서관이 있고, 에베소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바울 일행을 죽이려 했던, 2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원형극장도 있다.
에베소와 서신서들
바울이 이곳을 떠난 후 예루살렘이 멸망할 즈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곳에서 요한1·2·3서를 기록하고, 요한복음까지도 기록했다. 그의 무덤은 아야솔룩 중심에 있다.
사도 바울의 전도 활동 이후 에베소는 서신서의 중심 역할을 한다. 성경에는 에베소로 보내진 편지만 6개가 있고, 이곳에서 보낸 편지도 6개나 된다. 편지글로 기록된 서신서 22권 중 12권이 에베소와 관련해 기록됐으니 당시 에베소의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알 만하다.
에베소에서 사랑을 외치다
요한은 죽기 전 밧모 섬 유배에서 에베소로 돌아왔다. 교회에서 그를 강단에 세우면 날마다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를 반복했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 운동을 일으켜 믿음으로 에베소의 가장 강력한 풍요와 사랑의 신인 아데미를 물리쳤다. 그런데 얼마 후 에베소는 믿음의 행위에만 치중하다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밧모 섬에서 돌아온 요한은 요한1·2·3서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자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말씀을 강조하다 보면 기도와 사랑에 소홀하기 쉽고 기도를 강조하다 보면 말씀에 소홀하기 쉬운 것이 성도의 특징인가 보다. 우리는 하나를 고치려다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없는가? 이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과 사복음서를 상징하는 4개의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에베소에서 기우뚱하는 우리의 신앙을 향해 말씀하신다. “네 기둥처럼 말씀, 기도, 전도, 생활에 균형 잡힌 신앙을 가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