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시내산에서 그리심산까지
모세가 레위기 말씀을 받은 시내산에서 북쪽으로 175km를 지나 팀나 구리 광산에 이르렀다. 광야 한가운데 성막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성막에 들어서자 제단이 눈에 띈다.
마침 고대 방식을 이어오는 사마리아인 유월절 제사가 있어 다시 북쪽으로 300km를 달려 가나안 산지의 중심부인 세겜에 이르렀다. 거기서 세겜 남쪽에 자리 잡은 해발 850m 그리심산으로 올라간다. 이곳에는 사마리아인들이 살고, 최근에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기에 제법 길이 잘 나 있다.
사마리아인 대부분은 그리심산 정상 부근에 모여 살고 있었다. 그리심산을 모리산으로 생각하는 사마리아인은 자신들이 정한 유월절에 제사를 드린다.
사마리아인의 유월절 제사
그리심산에 도착하니 이미 흰옷을 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당에 모여 있었다. 불타는 제단과 그 옆에 여러 개의 불타는 구덩이들이 보이고, 어린양들이 가족들 옆에 서 있다.
대제사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단에 올라서 큰 소리로 외치며 함성과 함께 기도하더니, 사람들은 칼을 들어 양의 목을 찔렀다. 모든 이들이 양의 목에서 피를 찍어 자신의 이마에 발랐다. 그리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양의 피를 도랑에 붓고, 철로 된 기역자 봉에 양을 매달고, 가죽을 벗기며 기름을 제거했다. 양 꼬리의 큰 기름덩이는 타고 있는 제단 위에 올려졌다. 그곳에는 기름과 함께 콩팥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연신 그곳에 소금을 뿌렸다.
이후 양은 십자형 나무에 달렸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연상된다. 십자가 행진이 가족별로 계속되더니 그 양은 무덤 같은 지하 불구덩이에 내려졌다. 진흙으로 그 위를 덮어 불기운으로 바비큐를 한다. 사람들은 피를 닦고 유월절 양을 먹을 준비에 들어갔다.
화목제와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
유월절 제사는 화목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막힌 담을 허시는 제물이 되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유월절 제사를 통해 속죄제와 속건제도 볼 수 있었다. 세 제사는 순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첫 유월절에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죽음의 천사가 피를 바른 집을 넘어갔다. 대속죄일에 언약궤 덮개인 은혜의 보좌 위에 피를 뿌리면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간과하셔서 다시 언약을 맺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셨고, 그 보혈의 공로로 사망은 우리를 넘어가고 영생이 왔다.
콩팥과 피와 기름을 다해 예배하라
사마리아인은 유월절 제사를 지낼 때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구분했는데, 그 세 가지는 피와 기름과 콩팥이다(레 3:10~11, 14~17, 7:27). 유대인들은 마음이 내장에 있다고 생각했고, 내장 중심에 있는 콩팥을 ‘마음’의 상징물로 봤다(합 3:16). 제단 앞에 부어 하나님께 드리는 피는 생명을 상징하고(레 17:11), 기름은 힘을 상징한다. 이 세 가지를 신명기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의미가 깊다.
“너는 마음(콩팥)을 다하고 뜻(생명, 피)을 다하고 힘(기름)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즉,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를 드리라는 뜻이다. 사마리아인이 제단에 제물을 드릴 때, 그렇게 연신 뿌려 대던 소금도 이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상징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