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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하나님께서 우리 왕이시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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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진정한 신앙은 평안할 때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일상을 누리고, 교회 내에서도 하나 된 영적 가족으로서 화목한 성도의 교제를 누리고 있는 동안에는 그 신앙이 바른 기반 위에 서 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나 갈등에 처하면 정말 그 개인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있었는지, 또 그 교회가 말씀의 기반 위에 든든하게 서 있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에 따라 살겠노라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의 신앙고백대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바울은 어떤 일 때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형제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1, 6, 8절)
-> 고린도교회 형제들 중에 누군가가 형제에게 불의를 행하고 속이고 있다. 이는 다툼으로 발전했고, 교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믿지 않는 자들 앞에 고발하게 됐다.

2. 바울은 형제간의 일을 불의한 자들이 아닌 어떤 사람에게 송사하라고 권면합니까? (1, 5절)
-> 바울은 성도 앞에서 송사하라고 한다. 여기서 ‘성도’는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를 가리킨다. 즉 교회 내의 권위자들에 의해 재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3. 불의한 자들 앞에서 형제간의 다툼을 다루는 것이 지혜롭지 못한 이유는 성도가 가진 어떤 특권 때문입니까?(2~3절)
-> 성도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과 함께 세상을 판단할 자들이며 심지어 성도는 천사를 판단할 자들이라고 한다. 이런 특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형제간의 다툼을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하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한다.

4. 그리스도인 사이의 다툼을 세상 권력 앞에 가져가지 말라는 권면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지위에 대해서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세상 나라의 권위보다 하나님 나라의 권위가 훨씬 더 크고 높기 때문이다. 언제나 재판은 분쟁 당사자들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사람 앞에서 이뤄진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권력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권력이 하나님의 권력보다 더 높다고 인정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5. 입으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왕이시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세상의 권세 앞에서 재판을 받는 행위는 그들의 왕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권세자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이런 문제가 없습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있다고 할 만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6. 우리 각자,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왕권을 더욱 온전하게 고백하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함께 나눈 후에 그런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지금도 하나님은 왕으로서 우리를 통치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쉽게 “아멘, 그렇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삶 가운데 그분의 왕권을 인정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살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세상 방식을, 예배당 내에서 교회 방식을 따라 이분법적으로 살아가는 데 익숙합니다. 또, 세상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세상의 권위 앞에 갖고 가는 데 익숙하며, 결코 교회 안으로 그것을 갖고 오지 않지만,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세상의 권위 앞으로 가져갑니다. 이는 세상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 하나님의 권위보다 더 크다고 인정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보여 왔다면 바로 지금 회개하고 하나님의 왕권을 온전히 고백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