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요한은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이달에 묵상할 요한복음 6~10장에서는 ‘누가 참 메시아인가’에 대해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의 논쟁이 펼쳐집니다. 이 논쟁은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돋보이게 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표적과 말씀을 통해 선언하신 “나는 ~이다”를 뼈대로, 참 메시아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요한복음 묵상에 앞서
요한복음 6~10장은 유대인들의 의심과 불신앙에 대항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을 구성하는 일곱 가지 표적과 일곱 가지 “나는 ~이다”(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그리고 절기의 흐름(유월절, 초막절, 수전절)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중 6~10장에 기록된 세 가지 표적(오병이어 사건, 물 위를 걸으신 사건, 맹인을 고치신 사건)과 네 가지 “나는 ~이다”(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그리고 유월절(6:1~71), 초막절(7:1~10:21), 수전절(10:22~42)에 대한 이해는 필수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다(6장)
6장 서두에는 오병이어 사건이 나옵니다. 시간은 두 번째 유월절이며 장소는 갈릴리바다 건너편으로, 그곳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6:1~4).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어디서’를 물으시는데,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라는 ‘얼마’에 집중합니다. 안드레 또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많은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없다”라며, 빌립과 더불어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말합니다(6:5~9).
이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믿기보다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더 의지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무리를 충분히 먹이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권능을 보이셔서 상황에 관계없이 충분히 먹일 수 있음을 증명하십니다(6:10~13). 이 표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여기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이해했는데, 이를 원치 않으신 예수님께서는 혼자 산으로 떠나십니다(6:14~15).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중에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하며, 믿음 없는 자의 모습을 보입니다(6:16~19). 한편, 무리는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하고도 예수님께서 진정한 ‘만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6:22~31). 이처럼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제대로 아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먹고 마시는 자만이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먹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뜻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해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믿음으로 고백할 때, 출애굽의 구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맛보게 됩니다(6:32~58).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7~8장)
7~8장은 초막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초막절이 이르자,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능력을 사용해 자신을 드러내는 정치적 메시아가 되라고 종용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때만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7:1~9).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기간 동안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교훈을 듣고 어떻게 배우지 못한 자가 글을 알고 진리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지 예수님의 성경 지식과 통찰력에 놀랍니다(7:14~15).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전한 교훈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았음을 뜻하는 동시에, 스스로 메시아이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7:16~39).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갈릴리 출신이기에 메시아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었는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 출신의 다윗의 자손으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릴 뿐,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부정합니다(7:40~52).
7장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한 공급원으로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이 드러났다면, 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간음한 여인의 죄 문제를 해결할 자로 빛 되신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빛이요, 진리이심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8:1~11).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오셔서 어둠을 몰아내고, 진리를 통해 죄에 매인 자들을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지키면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이 말을 오해해서 아브라함보다 예수님이 크냐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이심을 밝히시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음”(에고 에이미)을 밝히십니다(8:12~59).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이 상징하는 구원자 메시아로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공급원과 세상의 빛이 되시며, 진리를 통해 죄에 매인 자들을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명과 빛과 진리를 통해 자유를 얻어 살아가느냐, 영원히 죄 가운데서 죽느냐로 구분됨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9~10장)
9장의 맹인 치유 사건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8장)에 관한 표적이자,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10장)을 드러내는 연결 고리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인 자는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가 나은 것을 기뻐하기보다 그 일이 일어난 경위에 더 큰 관심을 쏟습니다. 더욱이 그를 데리고 바리새인에게 가자, 그들 안에서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 논쟁은 안식일에 일한 것은 불법이니 예수님이 죄인이라는 주장과, 죄인이 어떻게 표적을 행할 수 있느냐로 갈립니다. 이때 맹인이었던 자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선포했으며, 그로 인해 그는 바리새인들로부터 책망을 받고 쫓겨나게 됩니다(9:1~34).
사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쫓겨날 자는 맹인이었던 자가 아니라 그를 쫓아낸 바리새인들입니다. 맹인은 예수님의 능력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영적인 눈도 뜨게 됐지만, 바리새인들은 빛 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 영적 맹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바리새인들도 차라리 맹인이었으면 죄를 범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9:41).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며, 맹인이었던 자를 핍박한 바리새인들을 ‘삯꾼’이자 ‘도둑’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는 신앙고백 한 자를 마땅히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그를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해 목숨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하시며, 오직 이 문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누구신지를 증명하십니다(10:1~21).
유대인들은 수전절에 예수님께 자신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맞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 ‘선한 목자’라고 하시며, 그들이 생각한 그리스도와는 다름을 밝히십니다. 더욱이 “나와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다”라고 말씀하셔서,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고 광분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윗 왕조의 재건과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싸울 메시아를 바랐기 때문입니다(10:22~39).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핍박의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0:40~42). 이처럼 어두운 세상에는 소망이 없는 것 같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행진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린 백성의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맹인인 자들을 고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구원은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 이뤄짐을 알리시기 위해 자신을 ‘문’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문으로 인도할 선한 목자가 자신임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양인 우리는 목자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처럼 가치 혼란의 시대에 방황하지 않고 진리의 길을 따라가려면,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하는 제자가 돼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날마다 솟는 샘물> 3월호를 묵상하는 모든 이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