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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분열 왕국 시대의 왕들 대부분은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아합이 죽은 후에도 이런 상황은 계속돼 그들이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분열 왕국에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가치의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이 이 땅을 통치하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말씀을 묵상하며,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나는 누구를 두려워하는가(1장)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르자,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던 모압은 이스라엘의 왕권 교체기를 틈타 정치적 관계를 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져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하시야는 바알세붑을 찾습니다(1: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느냐? 아하시야는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메시지를 엘리야를 통해 전달하게 하십니다(1:3~4).
이 소식을 들은 아하시야는 두 번이나 오십부장과 50명의 군사를 보내 엘리야를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라고 하지만, 오히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모든 군사가 불에 타 죽습니다(1:9~12). 그러나 세 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며, 자신들의 생명을 귀히 여겨 달라고 호소해 죽음을 면합니다(1:13~14). 결국 여호와를 섬긴 엘리야는 생명을 유지한 채 산에서 내려오고, 바알세붑을 섬긴 아하시야는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습니다(1:15~17).
이처럼 권력을 가진 왕이 억압할지라도, 내가 두려워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결코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산꼭대기에서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대적들이 둘러싼 곳으로 내려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침상에서조차 내려올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은 누구인가(2장)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 계승의 때가 무르익습니다. 엘리야는 길갈, 벧엘 그리고 여리고로 장소를 옮기는데, 인수인계는커녕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선지자의 제자들도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 묻지만 “잠잠하라”는 이야기만 듣습니다(2:1~6).
사실 엘리야는 선지자 직분의 무게를 알기에 엘리사로 하여금 자유롭게 해 주고픈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와 동행했고, 엘리야에게 주어진 영감의 갑절을 소원합니다(2:9). 하지만 엘리야는 모든 것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만을 알리고 하늘로 올라갑니다(2:10~11).
이후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가르고(2:14), 수질이 좋지 않은 물의 근원을 소금으로 고치기도 합니다(2:19~22). 사실 이런 기적만 보면 엘리사의 사역 계승이 쉽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승천한 엘리야의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나서서 그를 당혹스럽게 했고(2:15~18), 그를 대머리라 부르며 엘리야와 같이 승천해 보라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2:23). 모든 사람이 자신을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선지자로 인정해 주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우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인정해 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언제 하나님을 찾는가(3장)
엘리사의 세대 계승 이후 성경은 엘리사가 심판할 아합 왕조에 다시 집중합니다. 여호람은 바알의 주상을 없애는 등 아버지 아합과는 달랐지만,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3:2).
여호람은 모압의 반역에 여호사밧과 함께 전쟁을 일으키지만,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물이 없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3:9). 여호사밧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엘리사를 떠올렸고, 이스라엘·유다·에돔 연합군은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여호람 앞에서 “당신과 나는 상관없는 자”라고 단정 짓습니다(3:13). 왜냐하면 여호람이 바알의 주상을 없애긴 했지만 여전히 다신주의자였기에 엘리사 입장에서는 도와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호사밧 때문에 하나님께서 물을 주실 것이며, 전쟁에서는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고 전합니다(3:17~19).
엘리사의 예언대로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완패를 당합니다(3:21~25). 모압 왕은 군사 700명을 이끌고 에돔으로 피신하다가 길이 막히자 왕이 될 맏아들을 인신제사로 드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격노로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3:26~27). 이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승리를 맛볼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은 누구에게 달려 있는가(4~5장)
엘리사는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 한 여인이 남편은 죽고 두 아들은 빚 때문에 종으로 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자, 빌려 온 빈 그릇에 빚을 다 갚고도 남을 기름을 채워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합니다(4:1~7). 또 수넴 여인에게 아들이 생길 것을 예언했으며, 태어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자 살려내기도 합니다(4:8~37).
또 흉년으로 굶주린 제자들을 위해 끓인 국에 독이 퍼져 못 먹게 되자, 가루로 독을 없애는 기적을 베풀어 제자들을 살립니다(4:38~41). 그뿐 아니라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도 행합니다(4:42~44).
이 같은 엘리사의 생명 사역은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게까지 이어집니다. 나아만은 나병 환자였는데,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소녀로부터 한 선지자가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나아만을 신임하던 왕은 글을 써서 여호람에게 나아만의 병을 고쳐 달라고 보냅니다. 이 소식을 접한 여호람은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5:7)라며 절규하지만,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엘리사의 대접에 화를 내며 돌아가려 했지만 종들의 설득으로 요단 강에서 몸을 씻어 병 고침을 받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으며,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가 제단을 쌓고 오직 여호와만 예배하겠다는 나아만의 고백으로 하나님만이 온 세상을 치료하고 주관하시는 분임이 드러납니다(5:15~19).
이 고백과 대비되는 예가 게하시에게 나병이 옮겨가는 장면입니다(5:20~27).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재물로 바꾸려 한 자에 대한 심판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개인적인 실리를 챙기려는 행위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상반된 모습임을 깨닫게 합니다.


내 문제를 해결할 분은 누구인가(6~7장)
선지자의 제자들이 거처가 좁아서 집을 마련하던 중에 한 사람이 빌려온 도끼를 요단 강에 빠뜨리고 맙니다. 이에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지고 도끼를 다시금 찾게 해 집을 지을 수 있게 합니다(6:1~7).
이후 엘리사 이야기는 민족 공동체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당시 아람 군대는 번번이 엘리사의 방해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에 아람 왕은 엘리사가 있는 도단으로 군대를 보내 엘리사를 잡으려 했지만, 엘리사의 기도로 그들은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사마리아 한복판에 들어가 전멸당할 위기에 처합니다(6:18~20).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엘리사의 사환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이 장면을 똑똑히 목도합니다. 엘리사는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적군을 성안에 들여 음식을 먹이기까지 하며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전쟁의 주관자, 즉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증명합니다.
시간이 지나자 아람 왕은 다시 사마리아 성을 공격합니다. 이로 인해 성이 고립돼 성 안에서 나귀 머리가 엄청난 금액에 거래되고, 자식들까지 서로 잡아먹는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람은 책임을 엘리사에게 전가하고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엘리사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백성을 살리실 것을 예언합니다(6:24~7:2).
이 예언은 성문 밖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던 나병 환자들에 의해 성취됩니다. 그들은 아람 군대에 항복하러 갔다가, 성안이 빈 것을 발견해 마음껏 음식과 물질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에게 대군이 몰려오는 소리를 듣게 하시자, 아람 군대가 혼비백산해 도망가고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갔던 나병 환자들은 자신들만 누릴 수 있는 이 기회를 성안에 있는 백성에게도 전했고, 그 덕분에 백성의 생명도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은혜를 누릴 때, 이 사실을 믿지 않던 한 장관은 사람들에게 밟혀 죽는 비극을 맞습니다(7:3~20).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결과는 처참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 전쟁의 주관자, 우리를 구원해 주실 유일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너무 추상적으로 믿는 사람들도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며,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며, 내 삶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