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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은 인간은 두 가지의 심각한 두려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죄책감으로 인한 두려움입니다. 예수를 믿건 안 믿건,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진다든지,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터지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항상 죽음을 예찬하시던 목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한 시간을 더 사는 것보다, 빨리 죽어서 저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급성 간암에 걸리게 됐습니다. 후배 목사님들은 이제 이분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목사님께서 멕시코 어느 마을의 우물물이 간암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곳으로 요양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치료를 하지 않아야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평소 그분이 하시던 말씀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다들 의아해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간이 가진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도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죄인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죗값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죗값을 치를까 봐 벌벌 떠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끔 만납니다. 어떤 교인이 저에게 “하나님은 정말 컴퓨터 이상으로 정확하신 분인 것 같아요. 1년에 두세 번은 호되게 죗값을 치르게 하세요”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럼 자매님은 1년에 두세 번밖에 죄를 짓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더 이상 치러야 할 죄의 대가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유롭게 됐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더욱더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 징계하시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죗값을 치르게 하시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