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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멀리에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지만 그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울었고, 각자 자기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렸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욥과 함께 칠 일 낮, 칠 일 밤을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보았기 때문이다(욥 2:12~13, 새번역).
그 칠 일간의 침묵은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적 돌봄이었음이 분명하다. “쉬바(shiva)를 앉는다”-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곱을 앉는 것’이라는 뜻인데, 사별한 가족과 일주일간 친구들이 함께 앉아 있는 관습이다-고 하는 유대교의 관습은 이렇게 오래 욥의 슬픔에 동참한 친구들의 지혜로운 연민을 기념한다. 함께하는 침묵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마치 얇은 베일 같아서, 서로를 구분하면서도 특이하게 서로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킨다. 침묵은 사람들이 표현하지 않는 필요들,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는 필요들을 보게 해 준다. 소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침묵의 습관을 기르는 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특별한 책임이어야 한다.
함께 침묵한 그 한 주간은 욥에게는 전환의 시간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있었고, 자신이 감내한 모든 고통을 인정할 수 있었다. 침묵은 고통이 우리의 마음을 뚫을 수 있게 해준다. “깊은 곳이 깊은 곳에 말하게”(시 42:8) 해 준다. 침묵은 슬픔에 빠진 우리를 찾아오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위로자다. 침묵은 그냥 위로만 받기를 바랄 때 치유를 받으라고 우리를 도전하는 친구다. 그리고 우리를 도전한다. 무엇을 도전하는가? 하나님이 그 공간을 사용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실 것을 믿으라는 것인가? 아니다. 욥의 이야기는 이 문제를 더 예리하게 바라보게 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종종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집착하지만, 욥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침묵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도전하도록 밀어붙인다.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욥은 하나님께서 이 상실의 심연으로 들어오셔서 그곳에서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꾸준하게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