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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고통을 유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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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해지려면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격언은 아이들을 훈육하거나 환자를 대할 때 적용되기도 합니다. 아이나 환자에게 최선의 유익을 주려면 일시적으로 고통을 겪도록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나 의사에게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때로는 잔인해져야 합니다.
이 격언은 하나의 원리입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제 역할을 다하려면 이 원리를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와 성도들 모두가 이 역할을 감당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사실 고통을 주고 불편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달래고 위로하는 것이 언제나 더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현재 상황을 근본적으로 다루고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복음은 초월적이고 불변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항상 현세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현 상황을 직면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향해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 말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의 상처를 확인하고 문제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고통을 유발하거나 심지어 기분을 상하게 해서라도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직시해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먼저는 이 세상의 필요와 고뇌, 아픔, 병리 현상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는 교회에 주어진 본래의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4절에서 자기 자신을 ‘빚진 자’로 표현했습니다. 교회 역시 ‘빚진 자’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교회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교회의 존재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교회가 이 세상의 많은 문제로 인해 사라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