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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북한에 들어갔다가 보름 정도 억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조사실에서 저와 함께 먹고 자며 붙어 지냈던 보위부의 김모 계장이 있습니다. 그는 조사관이고 나는 조사받는 사람이다 보니 처음에는 긴장감이 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향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긴장감은 사라지고 동포애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아침에 그는 제 손을 꼭 잡고 “김 선생님, 이제 선생님을 풀어 주라고 합니다. 참 잘됐습니다. 이제 미국에 돌아가셔서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시고 언제 한번 꼭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고는 제게 선물을 건네주었습니다. 러시아제 털모자였습니다.
그런데 제 손을 잡은 그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바깥 날씨는 영하 15도를 밑돌았지만 제 침대 안에는 전기담요가 있었기에 비교적 잠은 따뜻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관의 손이 이렇게 찬 이유는 무엇일까 해서 그의 침대에 손을 넣어 보았더니 전기담요가 고장 나 있었습니다.
그에게 “처음부터 고장 났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당신이 조사관이고 내가 조사받는 사람이면 내가 추운 침대에서 자고 당신이 따뜻한 침대에서 주무셔야지 왜 이렇게 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선생님, 우리 동포 아닙니까? 조국을 위해 좋은 일 하러 오셨다가 불편을 당하시는데 잠이라도 따뜻하게 주무시고 가셔야죠” 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먹먹해졌습니다. 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상황이 도대체 해석이 되질 않았습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땅에 사는 이들을 섬긴다면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순간 흔들렸습니다. 주체사상을 믿는 그의 동포 사랑이 나의 동포 사랑보다 더 훌륭해 보였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새롭게 떠올랐던 말씀이 ‘새 계명’입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를 덧붙이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