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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형 교회 청년부에선 명절 연휴에 비전트립을 가곤 하더군요. 기획하신 분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좋은 소식 선교단’. 명절이면 무한 반복으로 들어야 하는 질문을 피해 좋은 소식 들고 선교지로 떠나기.
‘좋은 소식 없냐? 국수 언제 먹여 주냐?’ 명절증후군 유발하는 작은아버지, 삼촌, 외숙모… 단지 결혼하지 않았단 이유로 어린애 취급하시는 권사님, 심지어 소개팅을 미끼로 다단계 물건을 팔려는 선배, 싱글의 나날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분들이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조카나 후배, 청년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일 것입니다. 명절에 만난 친척들도, 나이를 먹었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십니다. 결혼하는 적정한 시기까지 있다고 믿으시지요. 이것은 특히 여성들에게 멍에가 됩니다. 젊음과 미모를 무엇보다 중요한 교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발상입니다. 젊음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보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그렇게들 ‘좋은 소식’의 안부를 물으십니다.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라고 설득해야겠습니다. 누구를요? 오지랖 삼촌을? 올해는 꼭 방을 빼라고 닦달하는 엄마를요? 아니요. 나 자신을요. 미혼이어서 미완의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시다. 결혼하지 않은 나를 2퍼센트 부족한 인간으로 여겨, 속으로 잔뜩 움츠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미혼으로 ‘아직’의 삶을 살 것인가, ‘지금’으로 충분한 삶을 살 것인가. 사실 선택의 문제입니다.
폴 투르니에는 그의 책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서 결혼과 독신 역시 모험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문제는,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 그 결혼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 결혼하지 않는다면 독신 생활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혼이나 독신 그 자체가 아니라 주어진 결혼 또는 싱글의 나날을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로 충분한 삶을 사는 것이 진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