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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한에서 순교할 각오를 했던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공산 치하에서 기독교연맹에 가입하지 않고 목회를 계속하려면 감옥과 순교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순교할 마음으로 흉내라도 냈더니 1950년 8월 6일부터 1952년 1월까지, 하나님은 나에게 아홉 가지 기적을 허락하셨다.
우리 집에서 나와 산속으로 피난을 가던 날, 방에 두고 온 성경책을 찾으러 갔던 그 12초가 기적의 시작이었다. 진남포로 가지 않고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한 것이 두 번째 기적이다. 국군 헌병은 해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농로를 찾아 신막으로 향했고 남쪽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탄 것이 세 번째 기적이다.
서울역에서 영락교회에 간 것이 네 번째 기적이고, 필동에 사는 고향 사람을 만나 그 집에서 머물렀던 것이 다섯 번째 기적이다. 대구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 일자리를 구한 것이 여섯 번째 기적이고, 내가 돌봐준 아이들 덕분에 서부교회 전도사가 된 것이 일곱 번째 기적이다. 서문로교회 집회에 갔다가 박윤선 목사님을 만났고 고려신학교까지 입학하게 된 것이 여덟 번째 기적이다. 고향 선배 강진선 목사님의 주선으로 고려신학교에 들어간 지 두 달 반 만에 남교회 유년부 전도사가 된 것이 아홉 번째 기적이다.
1년 반 만에 아홉 가지 기적을 맛보며 무사히 부산에 안착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덕분이다. 꿈조차 꿀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연속적으로 길이 열렸다. 시편 73편 22 ~ 25절 말씀대로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신 것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자칫 교만하게 보일까 봐 그동안 아홉 가지 기적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일어난 믿기지 않는 일을 증언해 우리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리고 싶다. 내가 똑똑해서, 선견지명이 있어서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다. 내가 순교를 흉내라도 낸 걸 하나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