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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바울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매우 개인적으로 내게 부담이 되는, 율법주의에 대한 마지막 불만이 한 가지 있다.
앞에서 교회의 편협한 율법주의 때문에 신앙을 버린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우리 형은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한 첫사랑 여자와 관계를 끊었는데, 이유는 자신의 율법 기준상 여자의 ‘영적’ 수준이 양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30년 동안 그 철저한 도덕론에서 벗어나려 애썼고, 여태 하나님에게서도 벗어나 있다.
율법주의는 하나의 하위문화를 만들어 낸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 사는 우리는 하위문화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임을 잘 안다. 자녀들이 집안의 언어와 유산과 전통을 버린 채 현대 미국 청소년 하위문화를 좇는 모습을 지켜본 이민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규율과 가치관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신앙을 버리는 모습을 지켜본 그리스도인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율법주의로 인해 배교가 더 쉬워진다.
로버트 파라 케이폰은 말한다. “교회가 오랜 세월 실수의 두려움만 심어 주어 결국 우리를 잘못 배운 피아노 교습생처럼 만들어 놓았다. 주 관심이 음악 연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 없이 창피당하지 않는 데 있다 보니 피아노를 쳐도 그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야 은혜의 선율을 듣게 됐다. 그리고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내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신학대학에 다닐 때 나는 규율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놓치는 사람도 보았고, 규율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놓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도 자기가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을 놓쳤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은혜의 복음의 선율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