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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

일상이란 이름의 시 한 편 <서정의 세계>(2018)

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겨울 방학 직전, 시를 발표하는 수업에서 서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선생님은 반 친구들에게 서정을 응원해 주라고 하지만, 오히려 친구들은 서정 때문에 방학을 못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서정은, 우연히 우체국에 가는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시상의 소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분명 익숙한 것, 하루에도 몇 번씩 의미 없이 지나치던 것들인데 문득 고개를 돌리면 무심코 지나친 자신이 민망할 정도로 찬란한 것들을 대면할 때가 있다. 단편 영화 <서정의 세계>는 소복하게 내린 눈처럼 조용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흔적들을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만나는 아름다운 경험으로 선사한다.
시를 쓰는 일이 너무나도 어려운 초등학생 서정의 마음은 무겁다. 밥상 위에 노트를 펼쳐 놓고 머리를 쥐어짜는 서정에게는 “방학을 못하면 다 네 책임이야!”라고 말한 친구들의 얼굴만 둥실둥실 떠오를 뿐이다.
미사여구가 가득 담긴 글, 혹은 허영 넘치는 지식인들의 산물 등 시를 둘러싼 다양한 편견들이 있지만 서정이 갖고 있는 편견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과연 내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시를 쓸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미덕은 서정에게 일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할머니의 등장이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아이에게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들을 겪은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연신 “괜찮아”, “걱정마”, “주위를 둘러봐”라며 위로한다.
굽이굽이 좁은 시골길을 두 세대가 함께 걸을 때 비로소 다시 바라보게 되는 작은 것들, 사사로운 것들은 어느덧 꽃처럼 피어나 온기를 머금은 시상이 된다. 추운 겨울의 서림과 따뜻한 햇볕의 양감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영상미 또한 일상으로 한 걸음 들어온 시의 운율까지 체험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시는 우리 주위에 각각의 이야기로 머물러 있다. 과연 일상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까.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 삶은 예술이 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