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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낮은 자의 겸손한 모습, 바보 예수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도덕경에 “뛰어난 솜씨는 약간 서툴러 보인다”(大巧若拙) 했고, 소동파는 이를 받아 “큰 지혜는 바보와 같다”(大智若愚)라고 했다. 즉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어 보이기는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행적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군중들은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환호했지만,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일주일 만에 그 환호는 욕설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저주와 사망의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천국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셨다.
예수님의 이 아이러니한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작가들이 있다. 그중 1960~70년대에 활동한 홍종명(1922~2004)을 들 수 있다. 그는 일찍이 ‘바보 예수’를 표현했다. 길게 늘인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과 힘없이 축 처진 눈망울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예수님의 우울함이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홍종명 작가는 한국의 향토성을 살려서 작업했고, 일반적으로는 시골의 소녀나 동물들을 그리는 것을 즐겨했다. 작가는 “서구적인 재료를 쓰지만 어찌 서구인을 따르려 하겠는가? 내 나름대로 토속적인 특색을 살려…”라고 했고, “내 행복은 신께 감사와 더불어 예술혼이 내 연소(燃燒)를 통해 승화되는 것이다”라고 하며 자신을 불태워 작품 활동을 하기 원했다. 예수님의 얼굴을 그린 작품들도 대개 한국적인 정취와 질감을 갖고 있는데, 이는 최영림, 황유엽 작가 등과 함께 유사한 양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보다 약 20년 후에 바보 예수를 많이 그린 작가는 동양화가 김병종 교수다. 멍하니 크게 벌린 입과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한 퀭한 눈망울은 인간의 고뇌 속에 함께하는 또 다른 이미지의 예수님이다. 섬세한 선묘를 기본으로 하는 동양화의 기법으로 투박하고 거친 예수님의 얼굴을 표현하는 것은 당시에 아주 이색적이었고 파격적이었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는데, 여기에 소개한 작품 역시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심각한 표정의 예수상이다. 어쩌면 붉은 색으로 처리된 피멍울이 든 자화상 같기도 한 얼굴은 인간 실존의 고뇌를 담고 있다. 
작가는 작품 위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의 문 앞에서 승리하시다. 영생의 길을 여시다”라고 쓰면서 죽음과 고난을 이기게 해 주시는 주님께 깊은 신뢰를 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후에도 바보 예수를 자주 그려 그의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임을 보여 줬다.
바보 예수야말로 주님의 말씀이 드러난 주님의 얼굴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자신을 낮추는 낮은 자의 겸손한 모습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11). 말씀의 형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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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명, <바보 그리스도>, 1963

김병종, <바보 예수>,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