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수많은 화가가 작품을 시도했지만, 독일 화가 에밀 놀데만큼 창의적으로 표현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조르주 루오, 샤갈 등과 더불어 현대의 성화가로 명성이 높은 화가가 에밀 놀데(1867~1956)이다.
놀데는 20세기 초에 일어난 표현주의 화가인데, 표현주의는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보다는 감정이나 욕망, 무의식을 중시하는 사조로서 강한 채색과 거친 붓놀림, 대담한 구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놀데는 종교적인 주제 외에도 꽃과 바다 풍경을 즐겨 그렸고, 특히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많은 작품을 남겼다.
놀데는 원래 이름이 에밀 한센이었는데, 놀데 지방 출신이라 스스로 이름을 놀데로 바꾸었다고 한다. 어려서는 목공예학교를 다녔고 후에 직업미술학교에서 데생을 가르치다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다리파(Die Brucke, 혁명정신을 회화상으로 실현하는 다리가 되고자 한 표현주의 화파)에 잠시 가입하기도 했으나 곧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작업했다.
1911년에서 1912년 사이에 작업한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전에 그린 제단화(祭壇畵) 형태로 9개 조각에 나누어 그린 것이다. 주제는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 박사들, 열두 살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유다, 십자가에 달리심, 무덤가의 여인들, 부활, 승천, 의심하는 도마 등이다. 가운데 큰 화면에 <십자가에 달리심>을 두어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음을 보여 준다. 자세히 보면 다른 여덟 장면 또한 독특하고 개성 있는 표현이 두드러진다.
<십자가에 달리심>은 이전에 그뤼네발트가 그린 작품을 연상시키는데, 예수님이 너무도 슬프고 외롭게 십자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왼쪽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애통해하고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무심한 듯 다소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려 주사위를 던지고 있다. 인물들은 약간 과장된 모습이나 각자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상상력이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
화면은 평면적으로 처리되어 관람자가 이 공간 안에 들어가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강렬한 원색이 사용되었고, 효과를 위해 배경은 어두운 색으로 처리했다. 왼쪽 끝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아기 예수를 들어 올리는 새로운 구도, 그 아래 <동방 박사들>에서 강렬한 원색 처리, 오른쪽 위 <막달라 마리아>의 침울한 표정, 그 아래 <부활>에서 노란색과 분홍색의 조화, 맨 오른쪽 <도마와 예수님>의 야릇한 표정 대비 등은 모두 놀데의 창의성과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계절에 놀데의 작품을 보면서 예수님의 죽음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 나는 애통해하는 마리아의 심정을 갖기보다 병사들과 같이 예수님 자신이 아닌 예수님이 주시는 것들에만 관심을 갖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