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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이지만, 세상 안에 있습니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가 복음의 가치를 가지고 사람들을 변화시켜 주를 따르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지만, 때로는 세상의 정신과 질서가 교회 안까지 들어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 교회는 어떻게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까요?
바울은 초대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질서를 넘어서는지를 보여 줍니다. 도망자 신세의 노예였지만 사랑하는 동역자가 된 오네시모를 다시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그를 사랑으로 영접할 것을 요청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게 된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10절)
->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변호하기 위해서.
2. 오네시모와 빌레몬은 과거에 어떤 관계였으며 지금은 어떤 상황입니까? 오네시모와 빌레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11, 15~16절, 참조 18절)
->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으나 빌레몬을 떠나 도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와 더불어 빌레몬의 재산에도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주석가들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3. 오네시모는 현재 바울과 그의 사역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까?(11~12절, 참조 10절)
-> 오네시모는 과거에 무익한 사람이었지만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변화됐다. 이제 그는 주의 일을 위해 유익을 끼치는 사람으로, 그리고 바울에게 심장과도 같은 중요한 존재가 됐다.
4. 바울은 이런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무엇을 요청합니까?(13~14절) 당시 로마 사회에 노예제도가 엄존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 요청이 어떤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 바울은 범죄자, 도망자의 신분인 오네시모가 자유로운 신분으로 양지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빌레몬에게 자비와 용서를 청하고 있다. 노예가 도망쳤다가 그 주인에게로 다시 돌려보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빌레몬에게 이런 요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5.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유로운 신분으로 바울과 복음을 섬기는 것이 그를 영원히 얻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15절). 이를 통해 초대 교회가 노예제도와 같은 기존 질서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16절, 참조 갈 3:27~28). 그렇다면 현대 교회는 현존하는 사회적 모순이나 악습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합니까?
-> 바울은 노예이며 도망자였던 오네시모가 복음으로 변화되자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그가 자유롭게 복음을 위해 수고할 수 있도록 빌레몬에게 배려를 요청한다. 초대 교회는 제도 자체를 파괴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기존 제도를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이를 따라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 초대 교회가 이렇게 행했다면 현대 교회 역시 세상에 엄존하는 부조리와 악습에 대해서 반대하고 하나님 나라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
6. 바울이 노예 출신의 동역자를 위해 빌레몬에게 사랑을 요청하는 모습과 함께 우리 공동체를 돌아봅시다. 우리 교회와 사회 안에 복음으로 새로워져야 할 질서와 제도는 없습니까?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 의견을 말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사유 재산에 불과한 노예였습니다. 그는 빌레몬에게서 도망쳤고,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게 됐습니다. 과거에 무익하고 피해를 끼치는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이제 그 이름의 의미처럼 ‘유익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함께 주를 섬기는 동역자일 뿐 아니라, 바울이 자신의 심장으로 여길 만큼 사랑하는 자가 됐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이미 복음으로 회복된 존재가 됐지만 기존 질서를 도피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기존 질서 안에서 회복된 자로 주를 섬길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그는 빌레몬에게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사랑을 요청했고, 해를 끼친 것을 자신이 갚아 주고자 했습니다. 본문은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한 단면을 보여 줍니다. 세상의 질서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복음이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세상의 방식과 시각을 어떻게 넘어서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