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이달의 말씀 조철민 목사 (<큐틴> 디렉터)
‘아브라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별명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믿음의 조상이 맞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 믿음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에게 직접 “아브라함! 당신은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조상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아브라함은 멋쩍은 표정으로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분명 아브라함은 삶의 터전을 떠나라는 말씀과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 앞에서 순종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흠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4월 <큐틴>에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흠 많은 아브라함을 통해 자신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했는가? (창 12~14장)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도착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다시 애굽으로 향하는 아브람은 무척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잔꾀를 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제대로 기억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래를 데려간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고, 아브람의 실수도 바로잡으셨습니다. 이후 아브람은 가축 먹일 땅 때문에 조카 롯과 헤어지는데, 이번에는 욕심을 따라 소돔으로 향한 롯과 달리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그곳이 ‘여호와의 동산’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전쟁에 휘말린 롯을 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브람은 제 한 목숨 구하고자 아내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었는가? (창 15~16장)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합니다. 아브람에게서 난 자가 상속자가 되고, 무수한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게 하셔서 그것의 중간을 쪼개고 그 사이를 홀로 지나가시며 주도적으로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자신에게 큰 민족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사래의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습니다. 이로 인해 하갈과 사래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도망하는 하갈을 여호와의 사자가 설득하게 되는데, 이는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 아래서 그분의 약속을 믿고 인내할 때 복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왜 엎드려 웃었는가? (창 17~20장)
아브람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 뒤, 그는 아브라함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과의 언약에 대한 상징으로 할례를 요구하십니다. 더불어 사래의 이름도 사라라고 바꾸시고 아들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때 아브라함은 엎드려 웃고 맙니다. 자신의 나이에 아들을 낳는다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과 계속 함께하셨고, 그를 의인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사실 자식에 대한 축복 앞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별로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세상의 것을 탐내기보다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는가? (창 21장)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처음 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아들을 주셨고,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으로 직접 이름을 지어 주시며 아브라함의 허탈한 웃음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갈과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집에서 내보내셨으며, 그들 역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브라함을 사랑하시는지 알려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그를 통해 일하길 원하시고, 그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약함을 보였고, 가끔은 우리에게 실망도 안겨 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늘 동행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는 사실입니다. 2016년 4월 <큐틴>을 통해,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아브라함처럼 주님과 항상 동행하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