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미스바로 가는 길
예루살렘 서쪽, 기브온 산당으로 추정되는 나비(히브리어로 선지자) 사무엘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다니던 ‘족장의 도로’가 보인다.
그곳에서 산지 능선에 놓인 길 위에 남쪽부터 북쪽까지 예루살렘, 사울왕의 고향 기브아, 사무엘의 고향 라마에 이어 미스바와 벧엘이 있다.
현재는 팔레스타인의 수도인 라말라가 미스바 주변에 있다. ‘망대’라는 뜻을 가진 미스바는 언덕 위 도시다. 세로 26m, 가로 130m 정도 크기의 인공 언덕으로,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발견된다.
창세기부터 사사기까지 미스바는 ‘벧엘 아래’(창 35:8),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삿 4:5)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두 명의 드보라와 미스바
미스바의 언덕에 올라가니 큰 상수리나무 하나가 보인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나그네 생활을 할 때 어머니를 대신해 자기를 돌봐 준 유모 드보라를 이곳에 장사한 후 그곳을 ‘알론바굿’, 즉 ‘통곡의 상수리나무’라고 칭했다. 이후 선지자 사무엘은 이곳에서 회개의 성회를 열기도 했다(삼상 7:5).
랍비돗의 아내이자, 여자 사사 드보라도 미스바 출신이다(삿 4:4). 그녀의 이름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야곱, 즉 이스라엘을 돌보며 어머니 역할을 했던 드보라에 이어,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드보라도 민족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현재 미스바에 가 보면 수백 마리의 양들이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다.
미스바 성회와 블레셋과의 전투
미스바 남쪽에는 유다 지파의 산지가, 북쪽에는 벧엘에 이어 에브라임 지파의 산지가 이어진다. 또한 서쪽에는 베냐민 지파의 가장 넓은 평지가 놓여 있다. 미스바는 남쪽의 대표 유다와 북쪽의 대표 에브라임 지파가 만날 수 있는 중간 지점이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미스바에서 회개의 성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블레셋이 베냐민 고지, 미스바의 서쪽으로 쳐들어왔다. 아벡 전투에서 언약궤까지 빼앗겼던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이미 붕괴됐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의 때에 사무엘은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면서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때 바다 서쪽에서 먹구름이 다가오면서 강력한 우렛소리가 났다. 해변에 살던 블레셋은 구름이 산지에 부딪히면서 나는 우렛소리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믿음의 인내가 에벤에셀의 승리를 맛보게 한 것이다.
바벨론의 총독부가 있던 곳
미스바는 이스라엘의 임시 수도가 되기도 했다. 바벨론 왕은 유다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파괴한 후 미스바에 총독부를 두고,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당시 예레미야도 바벨론에 의해 풀려나 미스바로 갔다.
멸망당한 유다의 소망이 된 곳은, 회개의 성회가 있던 미스바였다. 그러나 이곳은 얼마 후 왕족이자 패잔병의 지도자였던 이스마엘이 그달리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그 역할을 다했다(렘 41:1~3).
현재 팔레스타인의 수도인 라말라 변두리에 위치한 미스바는 폐허와 같다.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하고 반역을 계속하다 버려진 이스라엘의 눈물, 알론바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