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왜 사마리아를 거쳐 세겜에 가셨나
요한복음 3장 22절에 의하면 세겜(수가성)으로 향하신 예수님의 여정은 요단강에서 시작됐다. 요단강에서 산지에 오르신 예수님은 세겜 남쪽 능선인 족장의 도로에 있는 실로에서 반나절을 걸으셨을 것이다.
요한복음 4장 4절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통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나온다. 요단강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요단 동편 베레아 길(지도 위 검정 점선)이 안전하고 가깝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산으로 올라가 유대인과 적대적인 관계인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심산에서 본 세겜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세겜지역을 볼 수 있는 그리심산에 올랐다. 그리심산 한쪽에는 여전히 사마리아인들이 살면서 유월절 제사를 지낸다.
세겜의 경치가 잘 보이는 요셉의 전망대(텔 엘 라스)에 섰다. 남북으로 발달한 이스라엘의 등줄기 산맥이 이곳에서 뚝 끊겼다가 940m인 에발산에서 다시 북쪽으로 뻗어 간다. 동쪽에서 보면 이 두 산이 거대한 어깨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그리심산과 에발산 아래에 자리 잡은 도시의 이름을 어깨라는 뜻의 ‘세겜’이라고 붙였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 후 바로 세겜에 와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반씩 나눠 선 채로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다. 두 산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는 해변이, 동쪽으로는 넓은 세겜 들판이 나온다.
세겜은 넓은 농경지뿐만 아니라 편리한 교통, 풍부한 수량 등 도시를 형성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거의 모두 갖춘 장소다.
예배의 기원이 된 세겜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세겜이 힘을 키우면 가나안 전역을 석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출애굽 직전 세겜의 왕이었던 라바유가 이 같은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고, 여로보암이 이곳을 수도로 삼았지만 역시 실패했다. 사방으로 뚫린 교통과 평평한 농경지로 인해 적에게 쉽게 침략당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각각 이곳에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으며(참조 창 12:6~7, 33:18~20), 요셉은 유언대로 이곳에 묻혔다(참조 수 24:32).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세겜의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가서 율법을 새롭게 하는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했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했다(참조 신 11:29, 27:12~13; 수 8:30~35). 이후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마지막 연설을 했다(참조 수 24:1~28). 세겜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드린 첫 번째 예배 처소이기도 하다.
세겜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종합하면, 세겜 역사의 주제는 ‘예배’다. 예수님께서는 여호와를 향한 예배의 기원이 된 세겜에 오셔서 예배를 오해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배의 근본을 가르치셨다. 그 말씀은 의미 없이 전통과 형식에 젖어 예배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귀에도 메아리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신령)과 진리(진정)로 예배할지니라”(요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