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지리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애굽’ 이름 유래·이집트 최고 수도인 놉
놉(멤피스)은 카이로 중심부 남쪽에서 약 23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헬라 시대부터 부르던 ‘멤피스’라는 지명은 애굽어인 ‘하쿠프타’에서 왔다. 하쿠프타가 헬라어로 아이귀프토스가 되고, 이 단어가 ‘애굽’ 혹은 ‘이집트’로 음역됐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정면에 프타 신전에서 가져온 스핑크스상이 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가장 아름다운 스핑크스상 중 하나라고 한다. 입구 오른쪽에는 람세스 2세의 거상을 보관한 박물관이 있다.
개역개정 성경의 애굽, 영어의 이집트라는 명칭은 함의 둘째 아들의 이름인 히브리어 ‘미스라임’에서 유래한다(창 10:6). 요셉이 야곱을 장사하기 위해 애굽 복장을 하고 가나안 땅에서 애통했을 때, 가나안 백성은 그곳을 아벨-미스라임(애굽인의 통곡)이라 불렀다.
또한 미스라임은 ‘두 개의 해협’이라는 뜻으로, 애굽은 그 이름대로 상부 애굽(남쪽)과 하부 애굽(북쪽)으로 나뉜다. 이를 나누는 지점이 ‘놉’이기 때문에 미스라임이라는 이름도 놉과 관련이 있다. 놉은 통일 이집트 최초의 수도였으며, 초대 왕이었던 메네스(Menes)가 건설해 프타 신에게 바친 곳이다. 이집트는 태양신을 섬기기에 대부분의 도시가 나일강 동쪽에 있는데, 놉은 색다르게 나일강 유역의 서쪽에 있다.
출애굽과 관련된 신들의 도시
놉 유적지를 돌아보면, 이곳의 신인 프타와 그의 아내 세크메트, 아들 네페르템이 있는 조각품을 볼 수 있다. 놉은 창조의 신인 프타 신을 섬겼고, 프타 신의 대리자였던 아피스 신인 황소를 숭배하기도 했다.
이 신들은 모두 출애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첫 번째 재앙인 피 재앙은 피를 마셨던 학살의 신 세크메트와, 피의 악취는 향기의 신인 네페르템과 관련이 있다. 또한 다섯 번째 재앙인 동물의 독종은 황소 신인 아피스와 암소 신인 하토르 신을 징계함이요, 여섯 번째 독종 재앙은 치료의 신인 프타의 아내 세크메트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서 만들었던 금송아지는 아피스나 하토르 여신과 관련됐다.
최고 도시에서 황폐한 무덤의 도시로
놉은 종교의 중심지이자 교역의 중심지였다. 이집트 학자 테르티우스에 의하면 놉은 주전 1557~1400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한다. 요셉 시대로 추정되는 힉소스 시대에는 이곳에 왕궁을 세웠고, 모세가 등장하는 신왕국인 18왕조 때도 바로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왕궁과 신전을 세웠다.
그렇게 번성하던 놉은 히스기야왕을 잠시 도왔던 디르하가(왕하 19:9)가 통치하던 주전 666년경, 앗수르의 에살핫돈과 앗수르바니팔에게 공격을 받아 함락된다. 주전 586년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후,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살았다(렘 44:1). 많은 인구가 살았던 이 지역에서는 서쪽에 ‘사카라’라고 하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발달했다.
이처럼 애굽의 최고 도시가 황폐하고 무너져 가는 무덤으로 남은 것을 통해 그들의 신들의 문화가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낳는지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