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지리

2025년 12월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밧모섬(계 1장)

성경지리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사도 요한이 유배된 밧모섬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티투스는 황제가 됐으나, 폼페이 폭발 이후 갑자기 죽어 동생인 도미티아누스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황제 숭배를 강조하며,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핍박했다. 이 핍박으로 에베소에서 살던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된다(계 1:9).

밧모섬은 ‘송진’이라는 뜻으로, 에게해의 스포라데스(Sporades) 군도에 속한다. 밧모섬은 아시아의 에베소 남쪽 밀레도에서 약 59km 서남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40㎢다. 최고봉 일리아스(Prophitis Ilias)와 작은 봉우리 세 개가 지협으로 붙어 있는 해안선은 60km 정도다. 1088년에 일리아스산 정상에 성 요한 수도원이 세워졌다. 그 아래쪽에는 요한이 계시를 받았다는 ‘계시 동굴’이 있다.

계시 동굴 안에서 환상을 본 요한

계시 동굴에 들어서면 오른쪽 돌벽에 두 홈이 보인다. 아래의 홈은 요한이 머리 숙여 기도하던 곳이며, 일어날 때 위의 홈을 짚고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요한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엎드려 기도했는지, 이마에 굳은살이 박여 있을 정도다.

계시 동굴 뒤에 세 갈래로 갈라진 바위 지붕이 보인다. 요한이 계시를 들을 때 ‘큰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바위를 갈라지게 했다고 한다. 그 세 갈래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동굴 안 그림에는 요한계시록의 환상이 압축돼 있다. 정면 오른쪽에 요한이 누워서 일곱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을 보는 장면이 있고,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한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세상 교회를 대표하며, 일곱 교회가 받은 칭찬과 책망은 오늘날의 교회를 돌아보게 한다.

 

밧모섬에서 본 일곱 교회의 순서

요한계시록은 전 세계 교회에 보내는 편지였다.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교회였다. 당시 서신을 정리해 보낸 곳이 모두 밧모섬에서 반경 400km 안에 들어온다. 계시록에서 교회에 보낸 편지의 순서는 시계 방향이다. 사사기의 사사 순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데, 이와는 반대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록하고, 헬라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요한도 지역적인 개념이 강한 유대인이다. 그는 공관 복음 기록 순서도 지역을 존중해 갈릴리에 이어 예루살렘으로 기록하더니, 계시록 일곱 교회도 도시 순서대로 기록했다.


갈릴리해안과 닮은 밧모의 해안

이스라엘에서 유학을 마치고 그리스로 이사하던 중 들른 밧모섬의 계시 동굴은 충격적이었다. 계시 동굴을 급하게 보고 나와 해안을 바라봤는데, 이스라엘 갈릴리바다의 해안가와 너무 비슷했다. 검은 현무암으로 이뤄진 돌과 항만의 모양, 심지어 자라는 식물도 갈릴리와 닮았다.

요한은 이 풍경을 보면서 얼마나 예수님을 그리워했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내겠다고 하신 말씀대로(요 14:21),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계시를 주셨다. 언젠가 이 밧모섬에 센터를 둔 선교사가 나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