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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동굴’에서 ‘동굴’로 전해진 복음

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동굴, 고난의 장소이자 복음의 못자리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의 아고라(agora) 한편에 있는 붉은 칠을 한 집에 들어섰다. 사도 바울이 옥중서신을 썼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우기라서 그런지 더 침울한 느낌이 든다. 아래 계단은 동굴로 향한다. 철망을 친 곳에 바울과 베드로, 두 사람의 얼굴이 있다. 여기에 왜 베드로의 얼굴이 있는 것일까?
바울은 이 감옥에서 주후 62년까지 2년간 지냈다. 바울이 풀려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가 이곳에 잡혀 왔다. 그리고 64년,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다. 그는 바벨론이라 불리던 로마에서 순교했다(벧전 5:13).
그가 순교 직전 기록한 베드로전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바로 ‘고난’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자신도 고난 중에 거하며 마지막까지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다. 동굴에서 죽어 간 베드로처럼 로마의 성도들도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에서 살았는데, 이런 사실을 근거로 보면 최초의 예배당은 동굴일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교회의 지하 돌계단 아래에 아기 예수 탄생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도 바닥에 대리석이 깔린 작은 동굴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으로 피난 가던 중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잠시 머무른 장소가 있는데, 그곳도 동굴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 역시 동굴이었다. 이처럼 복음은 동굴에서 시작해 동굴과 동굴로 전해진 것이다. 결국 동굴은 고난의 장소인 동시에 복음을 꽃피운 못자리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8).
이처럼 암울한 동굴에서 기록된 베드로의 편지는 갑바도기아로 전해진다(벧전 1:1).

 

갑바도기아의 괴레메와 데린구유
갑바도기아 지역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마 2:22)의 아내였던 글라피라 공주의 고향이다. 아켈라오의 아들과 손자가 이 주변을 다스리기도 했으니, 갑바도기아는 유대인들과 관계가 많은 지역이다.
베드로의 편지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 로마에서 이곳까지 왔다. 기암절벽이 가득 찬 갑바도기아의 지면은 화산재로 덮여 검정 모자를 쓴 듯하며, 지면 아래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인 연한 석회암이 버섯 모양의 바위와 산들을 이루고 있다. 석회암 벽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나있는데, 수천 년 전에는 이 구멍들이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여기에는 괴레메, 즉 ‘보이지 않는 지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에서 박해를 피해 은밀히 믿음을 지켰다. 이 지역에서 1천 개가 넘는 동굴 교회가 발견됐다.
지하 동굴 지역인 데린구유. 이곳은 둘레만 30km, 지하 120m 아래 20층으로 이뤄진 대규모 지하도시다. 내려가는 곳곳에 돌문이 있는데, 이 돌문들은 박해를 피해 이곳에 머물던 그리스도인들이 위급할 때 문을 폐쇄하기 위해 만든 장치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나타나자, 순례자들과 함께 찬양하고 기도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동굴이라는 곳을 통해 이어지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전히 주님만 바라봤던 장소, 그리고 조용히 마음을 드렸던 장소, 동굴에서 울리는 복음의 메시지가 오늘도 우리를 겸손히 무릎 꿇게 만든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