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4년 01월

지금으로 충분하다

과월호 보기 임사무엘 목사 (분당우리교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언어학의 관점에서 2004년 미국 대선을 분석했다. 그는 조지 부시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를 ‘상대편이었던 존 케리가 부시를 맹비난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부시에 대해 비난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부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할수록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등학생들에게 수능은 ‘코끼리’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나는 문제인 것이다. 특별히 얼마 전 수능을 본 고3들에게 수능은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코끼리일 것이다.

 

고난은 해석의 문제
요한복음 11장에는 죽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과 가까웠던 나사로가 그만 죽고 만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서 나사로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고난이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은 것처럼 ‘왜?’, ‘어째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난은 힘든 것이다. 해석되지 않는 고통과 아픔이 고난의 정의이다. 때문에 고난이 해석되고 의미를 찾게 되면 더 이상 그것은 고난이 아니다. 고난이 해석될 때 ‘고난은 보석이요, 위장된 축복’이 된다.
예전에 내가 가르쳤던 한 학생의 아버님이 계셨다. 그분은 마지막 진급 기회를 앞두고 계신 경찰이었다. 보통 진급에 영향을 주는 것이 근무지인데, 안타깝게도 그분은 가장 진급하기 좋은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시게 됐다. 즉 진급에서 가장 먼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진급 전 원래 자신이 있던 곳에서 큰 사고가 났다. 이것이 2009년 용산 참사이다. 이후 원래 진급이 예정된 분 대신 이 분이 진급하게 되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분의 한 마디! “내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동일하게 오늘 내 뜻과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다.

 

아티스트 하나님
지난 해 11월 7일 수능 시험이 있었다. 예상보다 어려웠던 난이도와 함께 중압감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시험 앞에서 좌절했다.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낮은 점수를 받기도 하고, 수시 최저를 맞추지 못해 우는 학생도 있었다. 그것보다 더 마음 아팠던 것은 학생들이 가진 ‘수능 등급이 행복의 등급이며, 자신의 남은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이었다. 수능 이후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사실 점수 때문이 아니라 이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의 실수와 선택이 인생을 바꿔 놓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연약함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나의 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계기가 된다.
혁신과 창의성의 대명사,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창조성이란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서로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할 때, 전혀 새로운 것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으로 말하면 ‘고난은 내가 그리고 싶은 장소에, 그리고 싶은 것이, 그리고 싶은 때에 그려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고 때로는 실패한 것 같은 그림을 연결시키셔서 그림을 완성시키신다. 요셉의 비전과 이집트로 팔려간 고난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연결되었을 때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게 일어났고 내 삶에서 벗어난 그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멋진 그림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최고의 아티스트이신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지금으로 충분하다
고난을 믿음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 충분하다’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해야 한다. 수능 이후 힘든 것은 단순히 점수와 등급 때문만이 아니다. 수능이 자신의 가치, 곧 자존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TED에서 명강연을 했던 브린 브라운은 ‘사람에게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무엇인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하지 못하면 누군가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버림받게 된다는 두려움과 닿아 있다’고 말했다. 낮은 점수를 받고 힘든 것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연결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것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계시록 1장에는 예수님과 요한의 만남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께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제자였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서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는 모습(계 1:17)을 보인다. 너무 사랑하고 보고 싶었던 주님인데 왜 그럴까?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이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순교하고 주님 곁으로 갔지만, 자신만 초라하게 끝까지 남아서 90세가 넘는 나이까지 연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무가치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을 내밀어 그에게 ‘연결’하신다. 실패자라고 생각한 요한에게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성경의 마지막을 완성하게 하신다. 학식이 있던 바울도 아니었고, 누구보다 열정적인 베드로도 아니었다. 죽은 것 같이 엎드러져 자신을 한심하게 느낀 요한을 통해서였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며, 내가 쓸 마지막 책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역전의 하나님을 기대하라
학교 기도회 심방을 갈 때마다 학생들에게 내가 강조하는 것이 있다. ‘역전의 하나님! 역설의 하나님을 기대하라!’ 나는 청소년 때 한 번도 기도 모임에 나가본 적이 없다. 기도 모임을 같이 하자고 온 친구를 조롱하며 돌려보낸 것이 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청소년 사역자가 되었고, 학교에 기도 모임을 세우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실패와 초라함이 하나님의 실패와 초라함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나의 실패와 연약함을 물감 삼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천사들이 멋진 그림이 그려지는 것에 숨죽여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적 없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그림이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니 밑에 제목이 보인다. 천사들은 깜짝 놀랐다. 얼마 전까지 울고 있던 당신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초라함에 눈물짓는 내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지금으로 충분하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