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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수능 이후 뭘 할까? 놀며, 배우며, 도전하라!

과월호 보기 김지태 목사 (부산 영안교회)

수능 이후 뭘 할까? 놀며, 배우며, 도전하라!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는 시점이다. 수능도 끝나고, 수시도 끝났지만 좀처럼 마음이 평안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단 한 번의 결과로 그동안의 노력들이 평가된다. 솔직히 이 상황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모른 척 하려 해도 계속 신경 쓰이고, 쿨 한 척 하고 싶지만 쿨 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은 이미 정신 줄을 놓은 상태다. 누군가 와서 이 상황을 끝내주면 좋겠지만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놀아라!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뛰어나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노는 것’이다. 놀라고 시간을 내주면 고작 한다는 것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다른 것 하면서 놀라고 하면 컴퓨터에 앉는다. 밖에 나가 놀라고 하면 PC방에 간다. 결국 나름대로 노는 것 같지만 노는 방식은 똑같다. 이것은 진정 노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는 것이 제대로 노는 것일까? 소비를 해야 한다. 돈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를 소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일하게 인간만이 직립보행을 하도록 만드셨다. 서서 걷고 뛸 수 있는 존재가 우리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몸 전체를 통해 무엇을 하려 하기보다 특정한 부분만을 사용하려 한다. 바로 엄지손가락이다! 청소년 때에는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아도 놀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것이다. 똥 마려울 때 화장실 못가면 변비가 된다. 화가 날 때 자꾸 참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그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몸 안에 암세포가 자라게 된다. 즉, 나에게 주어진 무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잘 노는 것이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인데, 그것이 낭비로 끝나지 않고 재생산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실컷 놀고, 마음속에 밀려오는 허탈감으로 인해 놀지 못한 것 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재생산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추억’이다. 추억은 컴퓨터 폴더와 같다. 잘 저장해놓으면 내가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같은 형편에 있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의 시간을 추억이라는 폴더에 ‘SAVE’하는 것이다. 

 

배워라!
    얼마 전 고등부 학생이 페이스북에 충격적인 몇 권의 책을 소개했다. 제목은 이렇다.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 ‘20대, 공부에 미쳐라!’,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 ‘공부하다 죽어라!’ 이다. 솔직히 어떤 댓글을 달아줘야 할지 고민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만약 그 배움이 누군가에 의해서 떠밀려진 것이라면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지금까지 억지로 공부해왔다. 대학이라는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가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공부는 끝이다. 만약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학생활도 이름만 바뀐 고등학교 생활이 될 것이다. 졸업 때는 수능보다 더 어려운 취업능력 시험을 보아야 한다.
    삶의 시간만큼 배움도 함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이제는 공부 때문에 포기했던, 내가 꿈꾸었던 것을 배워야 한다. 전에는 모두가 같은 것을 배웠다. 그 가운데에서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누가 잘하나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좋아하는, 하고 싶었던 배움을 찾아서 배워라. 이렇게 시작된 공부는 기쁘고, 즐겁고, 노는 것처럼 배울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런 경우에만 미칠 수 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은 기억했다가 꼭 해보는 성격이다. 최근에 다양한 악기들을 배우고 싶었는데, 음악적 소양도 부족하고, 해야 할 일도 많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시간과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악기였다. 남 앞에서 연주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지만 작은 악기들을 조금씩 다룰 줄 알게 되었다. 오카리나, 우쿨렐레 등등. 이제는 빵 만드는 제빵 기술을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만든 빵을 가지고 아침에 학교 가는 고등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내 바람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나는 벌써 즐겁다.

 

도전하라!
    도전하라는 말은 너무나 식상한 말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 건강을 위해 등산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등산을 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강력한 동기부여도 필요했고, 등산을 위한 장비도 준비해야 했고, 함께 등산할 친구도 만들어야 했다.
    결국 등산을 했을까? 딱 한 번 하고 말았다. 서론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부터 너무 지쳐서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이 모든 것을 준비하지 않아도 혼자 가볍게 시작하면 더 오랫동안 즐기면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걸림돌과 준비해야 할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면, 눈을 감고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좀 실수해도 괜찮다. 언제부터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반대로 ‘실패는 실패일 뿐’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때론 실수해도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어른들은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맨날 교실에서 공부만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꿈꿀 수 있겠는가? 이제는 작은 도전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함으로써 마음속에 ‘Vision’이라는 작은 씨앗을 심어야 할 때다.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한 달을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해 봤나? 앞의 장황한 이야기를 한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놀며, 배우며, 도전하라!’ 이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어려운 수학 문제일수록 답은 1 혹은 0이다. 생각은 많이 하되 단순하게 시작해 보는 것이다. 이제 노는 것, 배우는 것, 도전하는 것 중 어느 것을 먼저 해보겠는가?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