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주일학교 디렉터)
기적 하나, ‘성장’
한 장 남은 달력, 등굣길 코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기말고사 시간표, 백화점 세일, 크리스마스, 첫눈, 겨울방학. 아! 벌써 12월이라니. 1년이 정말 빛의 속도로 지나가 버린 것 같다.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에 새삼스레 느끼는 건 청소년기는 폭풍성장의 시기라는 사실. “엄마! 이 바지 짧아서 못 입겠어!”, “엄마! 신발이 안 맞아요!” 부모님의 키를 추월한 지는 이미 오래다. 작년 겨울옷은 작아졌고, 그만큼 우리는 자랐다. 1년에 키가 10cm 이상 자라는 것은 청소년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아침마다 성장 호르몬 과다 분비로 생긴 여드름과 전쟁을 치르고, 눈의 성장과 함께 안구 길이가 길어져 청소년 10명 중 무려 8명이 근시가 되며, 성장판 호르몬 때문에 뼈가 늘어나 무릎이나 종아리가 아파서 자다가 깨기도 하니까.
푸르렀던 봄, 뜨거웠던 여름, 풍요로운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는 우린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랐다. 12월, 성장한 우리 모습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고요한 기적이다.
기적 둘, ‘변화’
12월에 발견한 건 껑충해진 키와 굵어진 목소리만은 아니다. 일 년 간 매일 아침의 분주함, 중간?기말고사의 초조함, 체육대회의 긴장감과 수련회의 성취감이 우리의 감정 은행에 고스란히 저축돼 있다. 친구와 오해하고 화해했던 기억들, 단톡방에서 주고받은 수많은 이야기들, 엄마와 싸우고 아빠에게 혼나고 언니에게 짜증 부린 시간들, 일기장에 적어 놓은 남모를 속상함과 눈물이 우리 기억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내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이마를 짚고 기도하던 엄마의 손에서 느꼈던 그 사랑과 무심한 척 꼼꼼히 챙겨주는 언니 오빠의 관심, 그렇게 대들면서도 나를 졸졸 따르는 동생을 일 년이 지나는 동안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예배 때 들은 설교 말씀들과 수련회에서 받은 생생한 은혜의 기억들, 교회 선생님들이 보내주신 문자 속에 담긴 사랑, 지난 열두 달 동안 우리는 더디지만 분명히 변화했다. 지나간 365일 속 8,760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일부가 됐다. 생각이 달라지고, 자신과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분명해졌고, 친구들과의 우정은 더 깊어졌으며, 가족들에 대한 이해도 더 넓어졌다. 무엇보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어른이 됐다.
기적 셋, ‘시작’
왜 12월이 끝이지? 13월은 왜 없는 거야! 1월에 시작해 12월에 끝나는 로마식 달력을 전 세계가 쓰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12월이 지나고 나면 다시 1월이 되고, 그렇게 한 해가 바뀌는 것이 시간의 법칙이다. 시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다는 철학자들의 생각과 다르다. 시간은 우연과 진화의 결과라는 과학자들의 이론과도 다르고, 시간이 끝없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어떤 종교의 가르침과도 다르다.
성경은 ‘시간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시간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살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12월이 지나간 일 년의 마지막이면서 새로운 일 년의 시작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시간의 고리는 오래도록 계속되겠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소중하고,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이다.
12월의 진짜 기적은 ‘마지막인 동시에 이제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늘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이 우리가 만나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기적이다. 다 보고난 동영상을 다시 처음부터 반복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12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살아 보지 않은 시간들과 가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떠난다. 분명히 힘든 일도 짜증날 일도 있을 것이고, 서럽고 슬픈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대와 설렘으로 다시 시작한다. 우리의 모든 시간을 시작하게 하셨으며, 우주의 모든 시간을 마무리하실 예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테니까. 기적의 주인공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실 테니까. 그렇게, 기적의 12월이 우리에게 왔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