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십대, Do you have a Real dream?
“잘하는 것을 해야 해요? 아니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해요?”
십대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꿈’은 십대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단어일 것이다. 그런데 “꿈을 위해서 네 모든 것을 바쳐야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확신 없는 가르침은 십대에게 거부감을 줄 때가 많다.
“저는 유튜버가 될 거예요!”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십대 초반의 초등학생에게 물었다.
“유튜버가 돼서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
학생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구독자 100만 명을 만들 거예요!”
십대는 꿈을 꾼다. 그 꿈은 10년 전, 20년 전, 100년 전 우리가 꿨던 꿈, 그러나 이루지 못한 꿈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real) 꿈은 어디에서 오는가? 십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2. 십대, To see is to get!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이자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은 1963년 8월 워싱턴 대행진 연설 중에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에서 그가 꿈꿨던 것은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나라였다. 그의 꿈은 존경받는 인권운동가가 되는 것이나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을 갖는 게 아니었다. 그의 꿈은 ‘보는 것’이었다. 피부색을 넘어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다음 세대들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50년 후,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미국 속담 가운데 “To see is to get”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꿈은 직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꿈은 내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직업은 꿈이 될 수도 있지만, 그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꿈은 나만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모두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십대의 시선이 그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보다 더 많은 이들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3. 십대,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4).
바사 제국의 유력한 인물인 느헤미야에게 꿈이 생겼다.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무너진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을 다시금 온전히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아닥사스다왕의 측근으로 왕의 신뢰를 받으며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직업이었을 뿐 그의 꿈은 아니었다.
그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그의 꿈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수많은 동포들과 조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회복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보고 싶었다. 그의 직업은 하나님의 꿈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6).
예수님께서 바라보신 것은 ‘십자가’였다. 완전한 하나님이셨고,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께도 죽음과 저주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길이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피할 길을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땀은 피가 됐다. 창조주이자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꿈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살릴 수 있는 존재가 나였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바라보셨고, 여전히 바라보고 계신 것은 ‘나’이고, ‘십대’이다. 주님께서는 십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고,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기를 소망하신다. 그것을 위해서 십자가를 바라보셨다. 예수님의 꿈은 ‘십자가’였다.
“십대들이여!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십대들이 바라보는 곳이 자신을 위한 곳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 주신 그 길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