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십대,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목사님! 저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저는 게임이 정말 좋고, 또 게임을 정말 잘하거든요.”
세대가 바뀌었다. 배고픔을 모면하기 위해 억지로 일하던 세대는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직과 사회를 위해서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것을 어리석게 여기는 세대가 바로 뒤에 서 있다. 지금의 십대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그들이 창조한 문화는 그들의 욕구, 갈망과 맞닿아 있다. 십대는 사이버 세상에서 자신들의 욕구를 자신들의 가치로 환원시켜 나가고 있다.
#2. 십대,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
십대가 돼서 처음으로 들었던 영어 명언이다. 당시 십대는 세상이 원하는 야망과 자신의 소망을 연결시켰을 것이다. 그 ‘야망’이 내 삶을 행복하게 해 주리라 믿으며 이 문장을 책상 위에 적어 두고, 야망을 위해 공부했을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A. H. Maslow)는, 인간은 다양한 욕구가 단계적으로 발전해 나가며 정신의 성장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총 5단계로,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사회 귀속의 욕구, 4단계 존중의 욕구, 5단계 자아실현 욕구이다.
그는 이 이론에서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돼야 상위 단계의 욕구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1단계 ‘생리적 욕구’가 충족돼야만 2단계 ‘안전의 욕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 욕구의 5단계 이론은 매슬로 자신에 의해서 수정됐다. 그는 나중에 인생 최고의 경험을 ‘자기 초월’, 즉 자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삶에서 찾음으로써, 최고 수준의 욕구라고 말했던 ‘자아실현’이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이야기했다.
십대 그리고 십대와 닮은 사람들은, 더 이상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가 주입하는 꿈을 꾸기보다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 SNS로 떠나고 있다. 십대는 ‘야망’을 갈망한다.
#3. 십대, 예수님의 소망으로 기울다!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 9:2).
사울의 욕구는 명확하고 강렬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를 향한 그의 적개심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사울은 그 무리가 사라지는 세상을 열망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사울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열망을 이루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없애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이며, 다메섹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 권리를 행사하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오리라 믿었다. 누군가를 가두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없애서 만든 세상이 과연 그가 꿈꾸는 세상일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고, 그 만남은 사울의 가슴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열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그토록 없애기를 원했던 이들과 함께하기를 소망하며,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 보여 줬다. 그는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삶의 가치와 기쁨을 고백한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로움과 세상에 대한 통치권, 그리고 온 우주의 주인 됨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스스로 낮아지셨으며,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죽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리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부인하셨다. 예수님의 소망은 오직 우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