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십대, 안 보여서 그래요!
“목사님! 아이가 예수님이 안 믿겨진대요.”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사연을 들어 보니, 모태신앙인 아들이 예수님이 안 믿어진다며 교회에 가기 싫다고 말한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불신앙을 확신했다.
“그렇구나. 그럼 어떻게 하면 네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니?”
아이는 예수님이 안 느껴지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다부지게 이야기했다.
“그래? 다행이다! 아까 다른 아이는 예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했거든.”
예수님을 봐야만 믿겠다고 하는 아이도, 예수님이 마음으로 느껴져서 눈물이 나야만 믿겠다는 아이도,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의심한다. 그들의 믿음은 보는 것과 느낌으로 구성돼 있다. 오늘도 십대는 보는 것과 느껴지는 것을 온전히 의지하고 싶어한다.
#2. 십대의 뇌가 달라졌다
통계청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청소년 통계> (2019)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의존 비율은 2017년(30.3%)보다 2018년(29.3%)에 미세하게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과하게 사용하는 십대의 비율은 여전히 매우 높다.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십대가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주된 콘텐츠는 ‘게임’(95.8%), ‘영화, TV, 동영상’(95.7%), ‘메신저’(94.6%) 등이다. 그중 중고등학생이 게임을 이용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KBS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은 경기도 고양시의 한 혁신학교와 함께 중학생을 대상으로 3개월간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한 후, 인지와 정서, 가족 관계에 일어나는 변화를 설문과 뇌 이미지 촬영을 통해 알아봤다. 그 결과 이들의 뇌와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됐다.
뇌 이미지 사진에서 자기 조절 능력과 충동 조절 능력이 향상됐으며, 작업 기억(working memory) 능력이 효과적으로 상승한 것이 밝혀졌다. 또한 설문을 통해 주의집중력과 가족 간의 의사소통이 전보다 원활해졌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뇌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안 봐야 할 것을 안 보기만 해도 십대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미래가 아름답게 달라질 수 있다. 십대는 또 다른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3. 의지하려면(depend) 의지(will)가 필요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창 3:6a).
여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봤다.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허락하시지 않은 ‘그 열매’가 자신들을 ‘하나님과 같이’(창 3:5a)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본 것에 의지했다. 그것은 분명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아무도 꾸며 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골 2:18).
어떻게 보면 ‘보이는 것’에 의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봐야 하는지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예수님을 처음 만난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과 앎을 버리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눅 5:4)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어부들의 소망인 ‘만선의 꿈’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그는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 이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가 됐다.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0:12).
십대는 보는 것을 의지한다. 하지만 성경은 보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라(depend)고 말한다. 이제 십대의 의지(will)가 필요하다. 보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세우기로 작정해야 한다. ‘의지’(will)도 전인격의 한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