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20년 04월

십대, 친구야 뭐하니?

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친구가 필요하다!
“중학교 친구 사귀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올해도 어김없이 검색 사이트에는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는 질문이 올라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모든 십대는 ‘친구 찾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그리고 온라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자랑한다. SNS에서는 ‘천하인싸대회’를 벌이는 듯하고, ‘좋아요’ 옆 숫자는 행복 지수가 돼 버린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흔하지만, 당시 휴대폰은 ‘로봇 태권V’와 같은 공상 과학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신기한 기계였다. 하지만 친구는 언제나 만날 수 있고, 함께 놀 수 있는 존재였다. 친구를 사귀기 위한 방법이나 처세술에 대한 질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지금의 부모 세대에게 ‘친구를 사귀기 위한 기술’ 같은 건 없었다.


#2. 관계 속에서 자라는 행복!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한 삶을 위한 몇 가지 요건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70여 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그 연구 결과를 담은 책인 《행복의 조건》에서는, 행복하고 건강한 나이 듦을 결정짓는 요소는 지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라고 주장한다. 따뜻한 인간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명 십대에게도 관계는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친구와의 관계는 ‘행복’이라는 단어와 매우 밀접한 영역이다.
많은 학자들은 십대가 겪는 관계 안에서의 정서적 불안정은 부모와의 관계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최성애·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에 따르면, 부모와 갈등을 겪으며 자란 자녀는 공감과 관계의 기술을 잘 배우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감정적인 조율이 어렵거나 자신감 결여, 표현력 부족, 열등감, 정서적 불안 등으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원인만으로 행위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친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했다. 독일어로 ‘친구’, ‘동료’는 ‘Mitmenschen’인데, 이는 ‘함께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책 《버텨내는 용기》에서 아들러 심리학을 풀어내며, 아들러는 친구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맺어지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함께하는 사람인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십대는 좀 더 깊은 행복을 맛볼 수 있다.


#3. 대신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존재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목사님, 지체가 뭐예요?”
나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입을 열었다.
“어떤 사람이 A라는 사람의 머리카락 몇 개를 뽑았어. 그렇다면 빠진 머리카락이 A일까? 아니면 빠진 머리카락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A라는 사람일까?”
“만일 A가 사고로 오른쪽 팔을 잃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잃어버린 오른쪽 팔이 A일까? 아니면 나머지 신체가 A일까?”
여기까지 쉽게 답하던 학생은 다음 질문에서 말문이 막혔다.
“만약에 A를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 있다면, 오른쪽이 A일까? 왼쪽이 A일까?”
지체란, 없어지거나 사라졌을 때 다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한번 없어지면 재생하거나 자라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곧, 그 무엇으로도 대신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우리 몸의 지체라고 말할 수 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5~26). 
성경은 우리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십대는 마치 자신의 일부를 찾듯이 친구를 찾을 수밖에 없고, 모든 지체가 함께해야 온전한 것처럼 친구들은 함께해야 진정한 기쁨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몸인 친구이기에 잠시의 이별과 헤어짐은 곧 그리움이 된다.    
“친구야! 요즘 뭐하니?”
오늘따라 소원해진 친구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