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십대, 쓰레기 더미에 갇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휴대 전화로 게임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는 무궁화 꽃이 필 때만 움직일 수 있는 놀이가 있었다. 술래가 담벼락에 얼굴을 묻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외치는 동안에만 움직일 수 있다. 꽃이 필 때만 움직이고, 꽃이 필 때만 잡힌 친구들을 구할 수 있는 놀이다.
“목사님 저는 잘 태어난 걸까요?”
“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의 잦은 부부 싸움과 별거, 그리고 이혼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아이가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 적이 있다. 모든 불행과 시련의 원인이 마치 자신의 존재 때문이라고 여긴 이 아이의 상처는 비단 이 아이만의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또래의 많은 십대들도 이러한 상처를 안고 있기에 가슴이 저리고, 안타까웠다.
어른들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며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마치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더럽고 냄새 나는 쓰레기장으로 묘사하곤 한다. 이 아이들은 고통이라는 술래에게 잡혀 꼼짝달싹할 수 없게 돼 어둠 속에서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난지도 vs 하늘 공원
한강에는 난지도라는 섬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꽃이 피어 있는 섬이라고 해 ‘중초도’라고 불렀다. 꽃이 피어 있던 섬은 어느 날 갑자기 쓰레기 섬이 돼 버렸다. 1973년 서울의 모든 쓰레기를 이 섬에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섬에는 쓰레기로 만들어진 작은 산들이 생겼고, 곧 이 섬은 쓰레기 성이 됐다. 정확히 말하면 1973년부터 1993년까지 무게 약 1만 톤, 높이 약 100m, 넓이 8만 평의 거대한 쓰레기 더미 성이 쌓인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하며 놀던 시절, 그 섬에서 꽃과 함께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 대신 침천수와 악취, 그리고 파리 떼가 들끓는 ‘아골 골짜기’가 됐다.
누구도 그곳에서 꿈을 꾸거나 소망을 노래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 거대한 쓰레기 섬에 누군가 꽃을 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공원이 생겼다. 하늘과 닮아서인지 이름도 ‘하늘’이라는 공원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함께, 5월 1일에 사람들에게 개방됐다. 쓰레기로 버려진 죽음의 땅에 꽃을 심어 생명의 공원이 됐고, 이제 십대들과 동일한 나이가 됐다.
예수님 꽃이 피었습니다!
“목사님! 저 왕따당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십대 소녀가 전화로 찾아왔다.
“같이 기도해 보자! 그리고 내일 너를 왕따시키는 아이들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이야기해라! ‘너희를 위해 기도할게’라고 말이야.”
그때는 사실 이렇게 생각했다. 이미 쓰레기 성에 갇힌 이 아이가 자신을 죽음의 성에 가둔 아이들에게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다음 날 저녁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목사님! 됐어요!”
승리감에 도취한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랬다. 정말로 아이가 자신을 따돌리던 아이들 앞에 가서 선포했다.
“너희를 위해 기도할게.”
그러자 갑자기 그 아이들이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사과했다는 것이다.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 누군가가 이미 이 아이의 삶에 생명의 꽃을 심었다는 것을 말이다. 한 송이가 아니라 수많은 꽃이 아이의 삶을 덮어 공원을 이뤘다. 죽어 가던 영혼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주셨다. 이 아이의 삶은 예수님을 닮아 아름다운 공원이 됐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누구도 꽃을 심으려고 하지 않는 십대들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라는 꽃을 심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라는 꽃말로 피어 나신다. 십대들은 이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예수님 꽃이 피었습니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