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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십대, 일상에서 악(惡)을 경험하다!

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1. SNS에서 가해자가 되다!
“저한테 왜 이런 문자를 보내는지 모르겠어요. 여러 명이 채팅방에서 제게 욕을 하고… 친구들이 저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막 뛰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친구랑 오해가 생겼는데 제가 쓴 글을 캡쳐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보냈더라고요. 그걸 본 아이들은 저를 욕하고 난리가 났었어요. 나중에 그 친구와의 오해는 풀렸는데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요.”
학교 폭력(왕따)이 인터넷, 특히 SNS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채팅방에서 일어나는 사이버 폭력은 어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냥 친구들이 시켜서 같이한 거예요. 저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채팅방에서 같은 반 친구의 집단 괴롭힘에 참여한 가해자들의 대답은 이처럼 단순했다. 십대의 악(惡)은 생각보다 일상적이다. 하지만 악은 분명 악이다.


#2. 악은 평범한 얼굴을 가진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런 사이버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단체 채팅방으로 피해자를 초대해 욕설을 퍼붓거나, 피해자에 대한 거짓 정보 혹은 수치스러운 이미지들을 인터넷이나 SNS로 퍼뜨린다. 또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한 후 피해자만 남기고 모두 채팅방에서 나가는 사이버 따돌림을 통해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기도 한다. 이 같은 폭력의 상처는 피해자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가해자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일일 뿐, 죄책감은 어디에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 600만 명을 대학살한 끔찍한 일이 있었다.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16년 동안 도주하다가 잡혀서 법정에 세워졌다. 그는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이라는 죄목에 대해 자신은 그저 시키는 것을 실행한 관리였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재판을 지켜보던 철학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아이히만을 보며 ‘악’이란 너무나도 평범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의한다.
십대가 일상의 악에 너무 많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악을 악으로 느끼지 못하는 십대의 세상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엉겨 있다.


#3. 사랑으로 악을 이기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모욕하는 것에 대해 엄중하게 말씀하신다. 형제에게 화를 내고, 형제를 ‘라가’(바보) 혹은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처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십대들 가운데 남을 모욕하고 비방하면서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 이들이 있다. 이는 분명 악한 일임에도 너무 일상적이라서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일상은 다른 이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피해자들은 용서를 통해서 평안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서의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해서 도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화목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화목은 사랑에서 나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십대는 일상화된 악과 흔해서 평범해진 폭력 사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꿔 가며 살아가고 있다. 악을 이기고 서로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십자가의 사랑밖에는 없다. 그의 사랑에 기댈 수 있을 때에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나를 괴롭힌 이를 용서할 수 있으며, 모두와 화목할 수 있다.
십대들이여, 사랑으로 악을 이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