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 A to Z 소문수 목사 (사랑의교회)
“성경에서 십일조가 처음 나오는 부분은 어디예요?”,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십분의 구는 내 맘대로 써도 되나요?” 이렇듯 십일조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이번 호에서는 십일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 봐요.
십분의 일은 하나님 것, 십분의 구는 내 것?
십일조는 히브리어로 ‘아사르’, 헬라어로는 ‘데카토오’예요. 친구들도 잘 알듯, 소득이나 생산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죠(레 27:30~32). 이렇게 드려진 십일조는 기업이나 분깃이 없는 레위인을 부양하거나(민 18:21~24),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쓰였어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율법처럼 여기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으로 생각하곤 해요. 또한 십분의 일을 정확히 계산해 하나님께 드리고 나면, 나머지 십분의 구는 내 것이라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정말 십일조는 율법에서 시작됐을까요? 십분의 구는 내 것으로 여기고 마음껏 사용해도 될까요? 십일조는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 할까요?
십일조의 진짜 영적인 의미
성경에서 최초로 십일조를 드린 주인공은 아브라함이에요.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려고 가나안 연합군을 상대로 기습 작전을 펼쳐요. 상대는 강력한 최고의 군대였는데, 그런 군대를 멋지게 무찌르고 승리하죠. 잃었던 조카는 물론, 빼앗겼던 재물과 함께 끌려갔던 모든 사람을 다시 찾아 돌아오던 아브라함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어깨가 솟아오를 만큼 기세당당했겠죠?
그때 마침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 일행을 맞이하면서 외쳐요.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20)라고요. 그 순간 아브라함은 깨달았어요. ‘작전이 좋아서, 사기가 충천해서, 싸움을 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우리 손에 붙여 주셨구나.’ 아브라함은 그제야 자신의 높아진 어깨를 내리고, 하늘과 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려요.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쳐요. 최초로 십일조가 드려진 현장을 통해서, 십일조가 가진 진짜 영적 의미를 알 수 있죠. 즉, 십일조란 내 삶의 모든 소유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얻게 된 것임을 깨달으며,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리는 신앙고백인 거예요.
십분의 일은 십분의 십을 대표해!
신명기 15장 19절에는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잠언 3장 9절에는 가축뿐만 아니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명하셨어요. 십일조를 구별해 드릴 때는 분명 처음 난 것들을 드려야 했어요. 히브리 문화에서 처음 것은 전부를 대표해요. 장자가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의 유산을 받는 이유는 대표이기 때문이고,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장자를 치신 것은 그 장자가 대표하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 것과 동일한 의미예요.
즉 소산의 첫 것인 십일조는 소산 전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요. 십분의 일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십분의 십을 대표하는 거죠. 따라서 십일조를 드릴 때, 내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나머지 십분의 구도 하나님 뜻에 맞게 사용하겠다는 믿음의 마음을 담아야만 온전한 십일조가 될 수 있어요.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의 십일조, 생각의 십일조 등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수가 있지요. 모든 삶이 하나님 것이라고 고백하며 드리는 것은 무엇이라도 기쁘게 받으실 거예요.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마음으로 시작된 믿음의 고백이고, 일부가 아닌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행위예요.
온전한 십일조, 이제부터 시작해 볼까요?
“성경에서 십일조가 처음 나오는 부분은 어디예요?”,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십분의 구는 내 맘대로 써도 되나요?” 이렇듯 십일조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이번 호에서는 십일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 봐요.
십분의 일은 하나님 것, 십분의 구는 내 것?
십일조는 히브리어로 ‘아사르’, 헬라어로는 ‘데카토오’예요. 친구들도 잘 알듯, 소득이나 생산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죠(레 27:30~32). 이렇게 드려진 십일조는 기업이나 분깃이 없는 레위인을 부양하거나(민 18:21~24),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쓰였어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율법처럼 여기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으로 생각하곤 해요. 또한 십분의 일을 정확히 계산해 하나님께 드리고 나면, 나머지 십분의 구는 내 것이라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정말 십일조는 율법에서 시작됐을까요? 십분의 구는 내 것으로 여기고 마음껏 사용해도 될까요? 십일조는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 할까요?
십일조의 진짜 영적인 의미
성경에서 최초로 십일조를 드린 주인공은 아브라함이에요.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려고 가나안 연합군을 상대로 기습 작전을 펼쳐요. 상대는 강력한 최고의 군대였는데, 그런 군대를 멋지게 무찌르고 승리하죠. 잃었던 조카는 물론, 빼앗겼던 재물과 함께 끌려갔던 모든 사람을 다시 찾아 돌아오던 아브라함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어깨가 솟아오를 만큼 기세당당했겠죠?
그때 마침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 일행을 맞이하면서 외쳐요.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20)라고요. 그 순간 아브라함은 깨달았어요. ‘작전이 좋아서, 사기가 충천해서, 싸움을 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우리 손에 붙여 주셨구나.’ 아브라함은 그제야 자신의 높아진 어깨를 내리고, 하늘과 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려요.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쳐요. 최초로 십일조가 드려진 현장을 통해서, 십일조가 가진 진짜 영적 의미를 알 수 있죠. 즉, 십일조란 내 삶의 모든 소유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얻게 된 것임을 깨달으며,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리는 신앙고백인 거예요.
십분의 일은 십분의 십을 대표해!
신명기 15장 19절에는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잠언 3장 9절에는 가축뿐만 아니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명하셨어요. 십일조를 구별해 드릴 때는 분명 처음 난 것들을 드려야 했어요. 히브리 문화에서 처음 것은 전부를 대표해요. 장자가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의 유산을 받는 이유는 대표이기 때문이고,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장자를 치신 것은 그 장자가 대표하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 것과 동일한 의미예요.
즉 소산의 첫 것인 십일조는 소산 전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요. 십분의 일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십분의 십을 대표하는 거죠. 따라서 십일조를 드릴 때, 내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나머지 십분의 구도 하나님 뜻에 맞게 사용하겠다는 믿음의 마음을 담아야만 온전한 십일조가 될 수 있어요.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의 십일조, 생각의 십일조 등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수가 있지요. 모든 삶이 하나님 것이라고 고백하며 드리는 것은 무엇이라도 기쁘게 받으실 거예요.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마음으로 시작된 믿음의 고백이고, 일부가 아닌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행위예요.
온전한 십일조, 이제부터 시작해 볼까요?